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프리츠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1973)는 환경위기에 대해 인류를 각성시킨 선구적인 업적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책에 속한다. 사실, ‘환경’이 단순한 공해문제가 아니라 산업사회가 일념으로 추구해온 경제발전 논리 자체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확고한 인식이 형성된 것은 주로 이 책 덕분이었다. 이것은 풍요를 추구하는 경제논리가 어째서 자멸적이며, 지속가능한 대안은 무엇인지를 근원적으로 점검하고 있는 책이다. 경험 많은 경제학자의 풍부한 인문적 지혜로 뒷받침되어 있는 이 책은 출판 당시는 물론 지금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일찍이 독일 태생으로 영국 석탄공사의 경제자문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슈마허가 서구 근대 경제모델의 ‘비정상성’에 주목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며 얻었던 견문이었다. 그는 끝없는 풍요를 추구하며 자원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서양사회와는 달리 진실로 삶을 중히 여기는 자족의 경제를 동남아시아 사회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척결해야 할 것은 ‘저개발’ 지역의 ‘빈곤’이 아니라 ‘선진국’의 ‘풍요’라는 명쾌한 결론에 도달했고, 그 결과 ‘불교경제학’을 제창하였다. 불교경제학이란 요컨대 사람이 자본을 섬기는 경제가 아니라 자본이 사람을 섬기는 경제의 필요성을 말하는 새로운 경제사상이다. 슈마허는 정말 중요한 것은 성장논리나 기술혁신이 아니라 대지(大地)의 보존과 인문적 지혜라는 것을 되풀이하여 역설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처음 출판되자 인류의 존속에 관련된 심각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당장 비상한 주목을 끌었다. 그중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는 이 메시지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던 예외적인 정치 지도자였다. 카터는 슈마허를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여러 시간 동안 그의 말을 경청하였고, 그 결과 전문가들로 된 팀이 구성되어 ‘대통령지구환경보고서’가 작성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카터는 곧바로 백악관 지붕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여 ‘환경문제’의 긴급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그런데 이 태양광발전기는 그 후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된 레이건에 의해 취임 즉시 철거되는 불운을 겪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출판된 후 슈마허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되었다. 세계 전역의 대학과 연구소들로부터 끊임없는 강연과 면담 요청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슈마허의 메시지는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고, 인류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메시지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근본적이고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슈마허는 심장에 지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긴급한 메시지를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건강을 돌아보지 않고 대륙과 해양을 넘나드는 강연여행을 강행하였다. 그러던 중 1977년 9월 어느 날 스위스의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과로에 지친 그는 결국 심장발작을 일으켰고, 손쓸 틈도 없이 목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각 잉글랜드 남부 시골에 있던 슈마허의 집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바람 한점 없는 고요한 가을날 오전 10시께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부엌 찬장에서 찻잔 하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슈마허가 평생 애용하던 찻잔이었다. 이 신비로운 이야기는 그의 딸이 쓴 전기 <프리츠 슈마허의 삶>에 기록되어 있다. 슈마허의 생애와 업적에 관한 극히 치밀하고 객관적인 서술로 일관하고 있는 책의 전체 성격으로 볼 때, 이 이야기의 신빙성을 의심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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