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금융감독 당국이 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확대 시행하면서 제도 금융권의 주택 관련 대출이 한풀 꺾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것에 고무된 것인지 한국은행은 지난 8월부터 공언해 왔던 금리 인상을 사실상 내년으로 연기하는 “강한 모습(?)”을 보였다.
정책 당국이 추진하는 부동산 정책의 큰 줄기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주택경기는 살려야 한다. 그러나 집값이 너무 뛰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금리 인상으로 막는 것은 다른 부문의 경제회복을 저해하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주택담보 대출의 총량을 적당한 수단을 통해 규제하기로 하자.
여기서 주택 금융 규제를 위해 당국이 선택한 정책수단이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 규제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이다. 주택담보의 대출 가능액을 축소하고 소득에 따라 대출 규모를 통제하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규제가 부동산값 안정에 기여한다는 의미에서 이 조치의 확대 시행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두 정책수단은 부동산 담보대출을 취급하는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건전성 규제장치일 수는 있어도 무주택 서민의 “내집 마련”에 보탬이 되어야 하는 주택정책상의 정책수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 두 조치는 가난한 사람은 집도 사지 말라는 것으로 오해되기 쉽다.
혹자는 돈도 없는 사람이 무슨 주택을 구입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주택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상품이라면 돈 있는 사람은 사고, 돈 없는 사람은 못 사도 그만이다. 그러나 “내집 마련”이 사회 구성원의 공통적인 관심사가 되는 사회라면 상황은 달라져야 한다. 이 경우 주택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상품이 아니라 국가가 가능한 한 그 구입과 소비를 지원해 주어야 할 사회적 필수재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가난한 사람도 집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우리 사회에 이런 합의가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집 마련”이라는 표현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1가구 1주택이 사회적 공감을 얻는 근저에는 이런 합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의 주택금융 통제 위주의 부동산 정책은 이런 합의를 현실로 만드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다. 특히 총부채상환비율 규제가 문제다. 주택정책적 차원의 보완조치 없이 이 규제만 시행되면 저소득층은 도저히 집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보완책이 필요한가? 주택대출 기간을 30년 정도로 늘려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이런 장기 주택금융 상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금융기관이 취급하는 대출상품의 대종은 아니다. 따라서 적절한 주택정책이란 금융기관이 스스로 이런 대출상품을 주력 상품으로 취급할 수 있도록 지도와 지원을 강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기 대출로 묶인 금융기관 자금에 대해 정부가 공적 재원을 마련해 유동성을 지원하거나 이에 대한 민간 유통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는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 주택구입자금을 대출해 준 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이 관행은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 유지 측면에서 분명 통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내집 마련”의 꿈과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까지 그 정당성이 부인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주택정책의 이상과 금융감독의 현실을 잘 조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가난한 서민도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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