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승 산업팀 기자
“노무현 시절이 도덕 시간이었다면, 이명박 정부는 교련 수업 같아.”
한 대기업 임원이 술자리에서 풀어놓은 우스개다. 참여정부가 원칙적이고 다소 지루했다면, 현 정부 들어선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며 제식훈련을 받는 느낌이라는 얘기다. 김대중 정부 시절은 새 학기 담임의 첫 조회 시간에 비유했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의 존폐가 오락가락하던 터라, 담임선생의 말 한마디에 “정신 바짝 차려야 했던” 시기다. 그럼 김영삼 정부는? 마지막 정규 수업이 펑크나 널널한 자율학습을 했단다. 대기업의 잣대로 역대 정부의 스타일을 빗댄 것인데, 제법 그럴싸했다. 술자리 뒷담화로 치부하기엔 뼈도 있다.
권력에 대한 기업들의 시각은 냉정하고 현실적이다. ‘기업 프렌들리’ 정부에 대한 재계의 삐딱한 평가는 갈수록 심해지는 간섭과 압력 때문일 게다. 도덕 수업이야 따분하면 흘려들으면 그만이지만, 교련 시간엔 여차하면 ‘조인트’와 ‘뺑뺑이’가 뒤따르기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정부가 중도·실용을 표방한 뒤, 기업들에 대한 청와대의 ‘완력’ 행사는 훨씬 더 잦아지고 강도도 세졌다. 청와대 수석실과 신설된 각종 위원회에 개국공신들이 줄줄이 포진한 뒤, 앞다퉈 ‘친서민’ 아이템을 틀어쥐려는 과욕을 부리는 게 주된 이유다.
그러나 정치적 셈법이 앞서다 보니 간판 내걸기에 바쁘고, 필요한 돈은 기업들에 손을 벌려 마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제안한 무담보 소액대출사업(미소금융)은 4대 그룹에 수천억원을 반강제로 할당했고, 미래기획위원회의 ‘사회적 기업 구상’ 발표에 맞춰 몇몇 대기업은 예정에 없던 계획을 서둘러 내놓기도 했다. 과연 이런 사업을 청와대나 정부가 앞장서야 마땅한지는 찬찬히 따져보더라도, 권력 실세들이 저마다 기업들한테 추렴한 돈으로 서민정책이라며 생색을 내는 건 영 모양이 우습다.
재계에서는 지난해 닥친 경제위기가 ‘이명박 스타일’을 되찾게 해 준 계기가 됐다는 평가들이 많다. 애초에 현실성이 부족했던 ‘747 공약’의 굴레를 단박에 풀어주면서도, 4대강 등 개발 중심의 성장주의를 추진하는 데 맞춤인 환경이 됐다는 것이다. 촛불 이후 일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통치 행태에 대한 일말의 자성도 경제위기 이후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듯하다. 사실 권력자에게 ‘작은 정부, 큰 시장’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정부의 시장 개입을 용인하는 여론도 그의 스타일엔 우호적이다.
대기업 자본은 기본적으로 이 정부와 코드가 통하는 파트너다. 정부의 간섭과 준조세 부담에 ‘억지 춘향’이라고 엄살을 부리고 있지만, 태생적으로 권력의 눈에 들거나 적어도 밉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권력의 총애를 받는다면 금상첨화고. 검찰이 전 정권 비리를 파헤친다고 난리를 칠 때, 대통령의 사돈 그룹 총수는 아무도 몰래 조사를 받고 검찰청사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비자금 의혹이 다시 불거지고 있는데도 자기보다 훨씬 덩치가 큰 기업을 인수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배짱도 커졌다. 한 유력 금융기관장은 민간단체와의 오랜 파트너십을 일거에 내팽개치고, 대학 동기인 대통령한테 ‘서민금융’ 사업을 상신했다.
내년이면 집권 3년차이고 지지율도 썩 나쁘지 않다. 레임덕이 오기 전 한몫 챙기려는 권력과 자본의 셈법이 그들만의 암시장을 만들기 딱 좋은 때다. 지금 시장엔 외환위기 때 국민들의 세금으로 되살린 알짜 기업·은행들이 여럿 매물로 나와 있다. 엄격한 교련 시간에 정분까지 나서야 되겠는가.
김회승 산업팀 기자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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