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기획위원
내 친구 미누. 본명은 미노드 목탄. 1972년에 네팔에서 태어나 스무살 갓 넘은 1992년에 한국에 왔다. 지금 38살. 20대와 30대를 거의 모두 한국에서 보냈다. 내 뇌리에 에펠탑과 센강이 각인되어 있듯이 미누의 머릿속엔 남산과 한강이 있으며, 나의 제2의 고향이 프랑스인 이상으로 미누에게 한국은 제2의 고향이다. 그는 지금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 갇혀 있다. 한국 법무부는 내 친구 미누를 ‘보호’하지 말고 부디 나에게, 우리에게 되돌려 달라.
내가 미누를 친구라고 부른 것은 선언도 아니고 과장도 아니다. 나는 그를 자주 만났다. 명절 때 잠깐 만나는 웬만한 친척들보다도 자주 만났고, 지금 총리가 된 동기동창을 비롯하여 여느 동창생들보다 더 자주 만났다. 집회 현장에서도 만났지만, 남산 어귀 이주노동자의 방송국(MWTV)에서 만났고 내가 참여하는 ‘학벌 없는 사회’ 송년회에 축하 공연을 하러 온 ‘스톱 크랙다운’의 일원인 그를 만났다. 또 내가 출입국관리국 서울사무소 앞에서 쓸쓸히 일인시위를 할 때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카메라를 들고 찾아온 그를 만났다.
그를 아는 사람은 그의 미소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나에게 인간의 티 없는 미소가 무엇인지 보여준 진짜 친구다. 우리가 성장 신화의 채찍질 아래 줄달음치면서 잃어버린 원초적인 인간의 미소를 그는 간직하고 있었다. 대학 간판과 명함, 자산의 크기가 인간을 압도하는 사회, 온갖 계산으로 약삭빨라진 사회에서 국적까지 다른 그와 나는 다만 인간으로 만나 친구가 되었다. 그는 지금 강제퇴거명령을 받아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
미누는 한국이 좋았다. 한국에 온 뒤 노동운동, 미디어운동에 참여하여 이주노동자의 권익 신장을 위해 노력했고, 인권과 다문화 관련 활동으로 차별 없는 사회를 꿈꾸고 실천했다. 외국인 예능대회에서 대상을 받아 문화부 장관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한국 법무부는 내 친구 미누가 그동안 어떤 활동을 했든지 상관없이 미등록 상태이기 때문에 법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미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한국 정부가 외치는 다문화 구호는 물론 실용의 기치도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나에게 한국과 프랑스를 잇는 민간 가교 구실을 조금이라도 인정해줄 수 있다면, 실용은 응당 미누가 맡고 있는 한국과 네팔을 잇는 민간 가교 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법무부가 법 적용을 주장한다면 나에게 진 빚부터 갚아야 한다. 기약 없는 이방인의 삶, 언제 귀국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던 나와 국내 가족, 그리고 친지들은 여러 차례 한국 법무부에 나에 대한 공소시효가 언제 끝나는지, 망명 기간이 공소시효 기간에 포함되는지 등을 물었다. 그러나 이른바 문민정부 시절의 법무부도 책임 있는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결국 87년에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는 걸 확인해준 것은 그 10년도 더 지난 98년의 일이었다. 한국 법무부가 법에 따라 책임 있는 답변을 해주었더라면 나는 귀국을 10년 앞당길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 법무부에 묻는다. 그 10년 동안 국내 가족과 친지와 떨어져 있게 한 빚을 내 친구 미누를 되돌려주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갚으라는 내 요구가 지나친가?
사적인 사연을 꺼낸 것을 용납해주기 바란다. 그만큼 절박한 심정이다. 두 손 모아 빈다. 내 친구 미누를 추방하지 말라. 그의 미소, 그의 노래를 우리 안에서 활짝 꽃피우게 하라.
홍세화 기획위원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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