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삶의창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에 전시되었던 <몽유도원도>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흐레 동안만 전시된다는 그 그림을 보려고 우리 식구들은 제법 일찍 서둘러 전시장을 찾았지만 먼저 온 관람객들이 벌써 전시장 건물 밖으로 100미터도 넘게 줄을 짓고 있었다. 그것이 <몽유도원도>로 연결되는 줄인 것을 우리는 묻지 않고도 알았다. 기다린 지 10여분이 지났을 때 우리는 광장의 줄보다 더 긴 줄이 건물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30분이 지났을 때부터는 우리 앞에서 줄어드는 줄의 길이보다 우리 뒤쪽으로 벌써 복잡한 곡선을 그리며 늘어나는 줄의 길이에서 더 많은 위안을 얻었다. 여기저기서 안내원들이 기다려야 할 시간을 가늠해 주며, 기다리지 않고도 옆문으로 들어가서 볼 수 있는 다른 전시품들에 관심을 유도하기도 하고, 상설전시장에 전시된 <몽유도원도>의 복제품을 보도록 권유하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몇 시간을 바쳐 그림에 이르러도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은 2분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서 있는 줄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줄을 지어 기다리는 관람객 가운데는 <몽유도원도>에 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바로 우리 앞에 선 노인은 줄어드는 줄을 따라 서둘러 걸음을 옮길 수도 없을 만큼 지쳐 있었지만 다른 관람객들에게 상설전시장의 위치를 손으로 가리켜 알려 주었고, 우리 뒤편의 중학생 남자아이는 제 어머니에게 “엄마도 공부 좀 하세요”라는 말을 섞어가며 <몽유도원도>의 역사를 줄줄이 풀어내었다. 그들은 모든 사정을 미리 알고 단단히 각오를 하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안내원의 말은 엄포가 아니었다. <몽유도원도>에 가까이 갔을 때는 두 시간이 조금 넘은 뒤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어떤 사람들은 여섯 시간을 기다렸다고 한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가져온 <수월관음도> 앞을 아쉽게 지나, 통로를 따라 작은 모퉁이를 돌자 거기 유리관 속에 <몽유도원도>와 그 찬문이 길게 펼쳐져 있었지만, 황홀한 빛 같은 것은 없었다.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서인 듯 조명은 오히려 어두웠으며, 누가 떠밀지 않아도 떠밀리는 것처럼 자리는 불편했다. 그림의 이 구석 저 구석을 살펴볼 여유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긴 제서와 찬문의 처음 몇 글자라도 뜯어 읽어보려고 애쓸 시간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몽유도원도>를 보았다기보다 그 앞을 조금 천천히 지나갔다고 말해야 한다. 다른 관람객들 처지도 물론 우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진품 앞에서라고 해서 저 복제품 앞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본 사람은 필경 없었다. 그러나 줄을 서서 기다리던 두 시간 내지 여섯 시간과 그림 앞에서 보낸 2분을 견주며 후회하는 사람도 없었다. 통로를 빠져나와 다른 전시품 앞으로 걸어가는 관람객들의 말을 엿들어보면 낡은 그림 한 점을 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던 그 긴 시간을 스스로 대견하게들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몽유도원도>의 관람은 일종의 순례 행렬이 되었다. 사람들은 반드시 <몽유도원도>가 아니라 해도 위대한 어떤 것에 존경을 바치려 했으며, 이 삶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믿고 싶어 했다. 저마다 자기들이 서 있는 자리보다 조금 앞선 자리에 특별하게 가치 있는 어떤 것이 있기를 바랐고, 자신의 끈기로 그것을 증명했다. 특별한 것은 사실 그 끈기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두텁고 불투명한 일상과 비루한 삶의 시간을 헤치고 저마다의 믿음으로 만들어 낸 일종의 전리품이었기 때문이다. 아흐레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의 광장에 구절양장을 그린 긴 행렬은 이 삶을 다른 삶과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의 끈질긴 시위였다.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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