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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과경제] ‘스티글리츠 보고서’의 진정한 의미 / 이원재

등록 2009-10-14 20:47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세계적 경제학자들이 국민총생산 측정의 불합리성을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요청으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아마르티아 센 등이 구성한 ‘경제 성과와 사회 진보 측정을 위한 위원회’는 최근 첫 보고서를 내고 삶의 질을 포괄하는 대안적 국민총생산 설계 작업에 들어갔다.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스티글리츠는 27일 방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포럼’에서 이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청와대에서도 연내 ‘국민행복지수’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언론에서도 ‘행복GDP’니 ‘행복경제학’이라는 말이 인기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움직임이 가져올 근본적인 변화를 구체적으로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실제 스티글리츠 보고서를 살펴보면, 이번 연구가 가져올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기업 경영, 개인 소비생활, 투자활동 패턴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 모든 활동의 성과 평가 기준이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스티글리츠 보고서 내용은 매우 방대하지만, 핵심은 몇 가지 평가 기준 변화로 추릴 수 있다.

첫째, ‘비시장’ 영역에 대한 인정이다. 지금은 아기에게 이유식을 사다 먹이는 행위는 생산을 유발하므로 경제 성과를 내는 행위이지만,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는 행위는 그렇지 않다. 정규직으로 채용되어 직장생활만 하는 사람이 아르바이트하며 자원봉사하는 사람보다 경제에 더 기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문화도 여기서 나온다. 시장에서 거래해야만 가치 있다고 여기는 문화가 팽배한 것이다. 그러나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가정 내 노동이나 자원봉사 같은 ‘비시장적인’ 활동도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둘째, 양에서 질로의 전환이다. 지금까지는 휴대전화 통화 품질을 높이는 행위는 그 자체로는 국민소득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요금을 올려 받아야만 기업 매출이 올라가고 국민총생산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제품 및 서비스 품질 향상 노력도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보고서는 명시한다.

셋째, 평가 기준을 투입에서 성과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도 정부는 몇조원을 들여서 사업을 시작한다고 발표하면서 자랑스러워한다. 공공서비스 성과 측정 구조가 투입 위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입한 만큼 성과가 나는지, 그만큼 국민이 만족하는지를 측정해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입장이다. 넷째, 생산에서 생활로의 전환이다. 현재는 궁극적 평가 지표의 이름부터가 ‘국민총생산’인데, 앞으로는 생산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인 삶의 질을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고서는 밝혔다. 다섯째, 평균에서 평등으로의 전환이다. ‘1인당 국민소득’과 같은 평균적 지표가 성과를 얼마나 왜곡시키는지 보고서는 지적한다. 앞으로는 분배가 얼마나 되어 있는지, 특히 하위층의 삶의 질 개선이 얼마나 되었는지에 평가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시험 점수 매기는 기준이 바뀌면 공부 패턴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듯이, 성과 측정 기준이 바뀌면 정책 의사결정 패턴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국가의 평가 기준이 바뀌면, 기업과 개인 활동의 평가 기준도 바뀔 수밖에 없다.

기업은 결국 시민사회단체들과 대화하며 사회적 영향을 함께 고민하며 경영 전략을 짜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소비자도 투자자도 자신의 행위가 환경과 사회에 줄 영향을 고려하며 의사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환경 및 사회 성과가, 구체적으로 기업과 개인의 재무제표와 통장에 기록될 것이다. 영혼이 있는 기업, 이웃을 생각하는 소비자와 투자자가 성공하는 시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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