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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광물성’ 정권의 아무나 장관 / 김경애

등록 2009-09-29 19:54

김경애  사람팀장
김경애 사람팀장
“식물성·광물성·동물성 남자가 있는데 말이야, 누가 가장 괜찮을까?”

페미니즘 논쟁이 한창 뜨겁던 1990년대 중반 무렵, 우리 회사 내 여성 모임에서 한 대선배가 농담처럼 이런 질문을 던졌다. 사내 남성들의 성향을 이런 잣대로 한명 한명 분류해 보면서 모두들 배꼽을 쥐었는데, 이튿날 소문을 들은 남성들이 ‘나는 어떤 쪽으로 분류됐냐’며 은밀한 취재경쟁을 벌여 또 한 번 화제를 낳기도 했다.

우선 ‘동물성’은 누굴까. 마침 그즈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인공 최민수가 그 전형으로 꼽혔다. 한마디로 ‘카리스마 넘치는 터프가이’, 자칫 넘치면 흔히 ‘마초’로 불리는 남성우월주의의 ‘느끼남·육식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식물성’은 올해 초 나라 안팎 누나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은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에프포’(F4)를 떠올리면 된다. ‘부드러운 살인미소의 꽃미남’, 물론 이 역시 자칫 선을 넘으면 ‘의지박약 마마보이’일 우려가 있다. 최근엔 ‘초식남’으로까지 진화중인데, <위키백과>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로 자신의 관심 분야나 취미활동에는 적극적이나 이성과의 연애에는 소극적인 남성들이다.

마지막으로 ‘광물성’은 딱히 대중적인 전형이 없다. 외모나 성격이나 태도나 어느 것으로도 여성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무감각 찌질남’이랄까. 도가 지나치면 혐오나 기피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 오래된 ‘뒷담화’를 되살려 역대 정부의 여성정책을 한번 따져보자. 아직 봉건적 잔재를 벗지 못했던 이승만 정부는 논외로 치고, 박정희 이래 30년 군사독재 정권들은 말할 것도 없이 ‘마초들의 전성시대’였다. 상대적으로 국민의 정부는 ‘친여성주의’를 내걸고 여성부를 신설했으며, 참여정부 역시 여성가족부로 확대하고 예산을 늘리며 지원에 노력했다는 점에서 ‘식물성’으로 칠 수 있다.

그러면 이명박 정부는 어떤가. 이미 대선 때 예고한 대로 ‘여성가족부’를 ‘여성부’로 과감히 축소했다. 첫 내각 후보 가운데 2명의 여성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첫 낙마의 불명예’를 안았다. 그 하나였던 여성부 장관 후보는 최근 <교육방송>의 이사장으로 ‘부활’했다. 그나마 있는 듯 없는 듯 1년 반을 버틴 두 번째 여성부 장관을 바꾼다며 내놓은 세 번째 후보는 여성 분야에 대한 경력도 식견도 소신도 없을뿐더러 갖가지 도덕성 의혹까지 안고 있다. 여권 내부의 고언과 여성단체는 물론 여성학자들의 ‘분노에 찬 반대 성명’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무려 100명에게 전화를 해서 골랐다’는데 이렇다. ‘식품영양학 전공으로 음식 솜씨가 좋아 대통령 부인이 의욕적으로 펴고 있는 한식 세계화 운동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도 황당하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단지 여자란 이유로 아무나 장관 시키는 식이면 아예 여성부를 없애려는 속셈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올 지경이다.

측근들이 털어놓았다는 임명권자의 여성관도 ‘G20 수준’과는 한참 거꾸로다. ‘자신이 건설사 출신이다 보니 애초 페미니스트들과는 인연이 없고 우직한 일꾼형을 좋아한다’니 말이다.


이쯤 되면 이 정부의 여성정책은 가장 매력 없는 ‘광물성’이다. ‘동물성’은 그나마 남성으로서 자존심과 힘을 과시하고자 ‘약자’를 배려하기도 해 욕하면서도 끌리는 여성들이 있으니까. 지난해 촛불집회 때 앞장선 여학생과 주부들이 ‘옐로카드’를 보냈다면, 최근 급상승했다고 자랑하는 지지도 조사에서 유일하게 급락한 30~40대 일하는 여성들의 반란은 ‘레드카드’인 셈이다. 이대로 가면 정말 구제 불능 아닌가.

김경애 사람팀장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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