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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신퍼스트레이디 시대 / 백기철

등록 2009-09-23 21:11

백기철  국제부문 편집장
백기철 국제부문 편집장
요즘은 퍼스트레이디도 튀는 시대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브루니는 최근 “일부일처제는 지루하다”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일본의 새 총리 부인 미유키는 전생에 알고 지냈다는 영화배우 톰 크루즈와 언젠가 영화를 찍겠다고 한다. 남편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부인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집에서 때때로 대본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은 피부색만으로도 종전과는 전혀 다른 퍼스트레이디다. 최근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는 모습이 찍히면서 과다노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통적 의미의 대통령 부인상에 반하는 이들 ‘신퍼스트레이디’의 등장은 그 나라 국민의 사회문화적 성숙도를 반영한다. 국민의 의식을 훌쩍 뛰어넘는 퍼스트레이디가 나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씨의 존재가 아직도 절대적이다. 국민들의 시선으로 보면 그를 뛰어넘거나, 그와 다른 퍼스트레이디상을 제대로 보여준 이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뒤이은 이들이 그의 존재감을 더 돋보이게 해준 경우도 없지 않았다.

사실 육영수씨는 ‘육영수 여사’라고 불러야 제맛이다. <한겨레>는 1988년 창간 이래 ‘영부인’ ‘여사’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 용어들이 군부독재 시절 권위주의 의식의 잔재라는 판단에서였다. 이 또한 80, 90년대 민주화 질풍노도 시기의 소산이리라. 험난한 민주화 투쟁의 와중에 정통성 없는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는 용어를 사용하기가 꺼려졌던 것도 같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내며, 이희호·권양숙씨에게 이젠 ‘여사’란 호칭을 돌려주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던 무렵, 상당수 독자들이 <한겨레>에 “정말 권양숙씨라고 계속 쓸 거냐”고 항의했다. 독자들은 홀로 남겨진 대통령 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칼럼에서만이라도 이희호 여사, 권양숙 여사라고 적고 싶다. 가까이는 김윤옥 여사부터 멀리는 육영수 여사까지 모든 퍼스트레이디들에게 여사란 호칭을 붙여드리고 싶다. 순전히 개인 의견이지만, 시대가 바뀐 만큼 대통령 부인의 지위를 존중하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본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 퍼스트레이디들도 괜찮은 이들이 적지 않다. 육영수 여사를 둘러싼 일화는 숱하다. 이철 전 의원이 학생운동 하다 감옥 갔을 때 일이다. 육 여사가 박지만씨의 학교 선생님이었던 이 전 의원 아버지를 청와대로 불러 극진히 대접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희호 여사가 지난 8월 남편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며 시청 앞에서 마이크를 잡던 때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가냘프지만 힘있는 목소리에는 절제된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김윤옥 여사의 미소는 밝고 경쾌해서 사람들을 편하게 한다.

우리나라에도 소박하고 인간적인 모습의 신퍼스트레이디들이 많이 등장했으면 한다. 국민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졸지에 남편을 떠나보낸 두 퍼스트레이디도 이제 안식을 얻길 바란다. 이희호 여사는 요즘 49재를 앞두고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의 남편 묘역을 찾곤 한다고 한다. 건강하고 편안한 여생을 보내길 바란다. 권양숙 여사도 이제 힘든 짐을 내려놓고 새 삶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남편이 생을 마감한 부엉이바위가 바라보이는 침실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일은 끔찍할 것이다. 주변에선 봉하마을을 뜨길 권한다고 한다. 지금 집일랑 추억의 장소로 남겨두고 가족과 함께 거처를 옮겨 마음의 평화를 찾길 바란다.

백기철 국제부문 편집장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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