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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농업문명의 재생 / 김종철

등록 2009-09-18 21:40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오늘날 거의 모든 정책 입안자들과 지식인들은 미래를 단순히 현재의 연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잊고 있는 것은 지금과 같은 생활방식이 작동할 수 없는 날이 곧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것은 지구 온난화, 식량 및 에너지 위기 등등 긴급한 위기상황에 대해 조금만 깊이 생각해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세계적 경제 불황의 종식 여부를 놓고 논의가 분분하지만, 문제는 설령 이 불황이 극복되어 금융대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아니 돌아간다면 더욱, 심각한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난 수세기간 인류에게 풍요와 안락을 제공하거나 제공할 것을 약속해온 산업문명 체제가 거의 종말에 이르렀다는 인식이다. 왜냐하면 이 체제를 뒷받침해온 결정적인 요소, 즉 석유가 이제 생산 정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석유생산 정점이란 석유 자체의 고갈을 뜻하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는 석유생산 비용이 가파르게 올라가고, 그 때문에 값싸고 질 좋은 석유가 풍부하게 공급되는 상황이 끝난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그런 생산 정점 도달 시기를 2010년 전후로 보고 있다. 이것은 미국 정부도 이미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실이다. 2005년 5월 미국 에너지부의 한 보고서는 석유생산 정점에 대해 “세계는 이런 문제를 일찍이 경험해본 적이 없다”며 다가올 사태의 엄중함을 시사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결국은 석유 때문이라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군사적 행동에 의거한 석유의 안정적 공급이란 발상은 세상이야 망하든 말든 나 혼자만 살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임이 분명하고, 게다가 그래 봤자 오래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지구 온난화라는 가공할 사태는 석유 낭비를 부추기는 ‘미국적 생활방식’을 더는 용인하지 못한다.

미국 작가 하워드 컨스틀러가 쓴 <장기(長期) 긴급상황>이라는 책이 있다. 이것은 석유시대 이후의 상황을 대비해야 할 필요를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그는 오늘날 문명생활의 필수품들이 대부분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한다. 석유는 단지 에너지원일 뿐만 아니라, 산업문명에 불가결한 온갖 기술과 제품의 원료이다. 석유가 떨어지면 자동차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물론, 비료와 농약도, 옷도 구하기 어렵다. 스포츠도 영화도 미디어도 인터넷도 곤란해질 것이다.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컨스틀러는 산업문명 붕괴의 첫 신호가 비행기 운행의 중단 혹은 축소로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지만, 같은 논리로 지금과 같은 원거리 수송에 의존하는 자유무역, 그중에서도 특히 농산물의 원거리 유통 시스템의 붕괴는 필연적이다.

컨스틀러는 21세기 중반에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는 지역에 토대를 둔 농업과 재생에너지 중심 시스템으로 재조직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값싼 석유 공급이 중단된 세계에서 정보도 하이테크도 서비스업도 더는 경제를 견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그동안 우리가 깊이 중독되어온 ‘근대적’ 삶의 종말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 온난화라는 파국적 재앙이 목전에 닥친 시점에서 아직도 자원과 에너지의 낭비를 강요하는 산업 시스템을 고수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 중심의 자립, 자급의 농업사회로 전환하는 것은 시급하지만, 실은 이것은 오랫동안 ‘녹색사상가’들이 꾸준히 제시해 왔던 방향이다. 그런데 이제 석유문명의 종언이라는 사태는 우리가 원하든 않든 그 길밖에 활로가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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