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처음 찾아갔던 장항은 유난히 을씨년스러웠다. 교과서에 나왔던 장항제련소의 굴뚝이 멀리 쓸쓸히 서 있었다. 그곳에 서서 물었다. 한국 기업은 지역사회를 끌어안고 함께 성장할 수 있을까?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이곳은 한국 비철금속산업의 어머니다. 장항이 껴안아 키웠던 장항제련소는 한국 비철금속산업이 세계 10위인 현재의 거목이 되는 길에 첫 싹을 틔웠다. 장항제련소가 처음으로 용광로를 가동해 구리를 녹여 쏟아낸 6월3일은 ‘비철금속의 날’이 됐다.
그래서 장항은 엘에스(LS)그룹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장항제련소는 문을 연 뒤 1945년까지는 조선총독부가, 그뒤 71년까지는 국가가 직영했다. 71년 민영화한 뒤 금성사 등이 출자한 한국광업제련이 운영하다가, 82년 엘에스의 전신인 럭키금속그룹으로 편입된다. 현재 용광로는 폐쇄된 상태이지만, 소유주는 계열사인 엘에스산전과 엘에스니꼬동제련이다. 엘에스 연혁의 첫 줄에 ‘1936년 장항제련소 설립’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엘에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알짜 기업이다. 2008년 국내 법인이 낸 매출액만 19조1500억원, 영업이익은 1조2000억원이다. 장항제련소의 직접 후신인 계열사 엘에스니꼬동제련은 매출액 5조4000억원, 영업이익 5200억원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는 최근 신세대 경영자인 구자명 부회장을 시이오로 맞아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지금 그 어머니인 장항은, 안아 키운 아이에게서 옮은 병으로 신음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장항제련소와 주변 지역 토양을 정밀조사한 결과, 카드뮴·구리·비소 등 중금속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주변 땅을 모두 매입하고, 주민 372가구를 이주시키기로 했다. 또 앞으로 몇 년에 걸쳐 그 지역의 흙을 씻어내고 정화식물을 심는 등 다양한 정화작업을 펼칠 계획이다. 그리고 주민 건강 조사, 다이옥신 오염 조사 등 각종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궁금한 것은 정작 제련소의 운영 주체였으며 현재 소유주이기도 한 엘에스가 이 모든 과정에서 한발 뒤로 물러서 있는 이유다. 엘에스는 오히려 서천군이 내린 토양 정밀조사 명령조차 거부하고 취소청구 소송을 냈다. 제련소가 끼친 지역사회 영향에 대한 책임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장항제련소 오염 문제는 장항과 엘에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 기업과 사회의 관계와 그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오랫동안 한국 기업은 앞만 보고 내달려왔다. 빠르게 성장했지만, 빠르게 파괴하고 빠르게 잃어버리기도 했다. 환경도 지역사회도 인권도 그랬다. 요즘에야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며 묻는다. 그래서 정말 행복했느냐고. ‘지속가능 경영’이 한국 주요 기업의 핵심 경영 열쇳말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엘에스그룹은 신재생 친환경 에너지를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녹색’을 경쟁력으로 승화시키겠다는 도전적 기획이다. 그런데 ‘기업에게 녹색은 기회’라는 말은 진실의 절반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책임이다. 지속가능 경영은 단기적으로 이익을 희생하기도 하고, 합당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을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엘에스의 선택에서 한국 경제의 미래를 가늠한다. 한국 기업은 병든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행복한 미래로 향할 수 있을 것인가? 기업과 사회는 상생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에서 진심으로 책임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기회를 찾는 기업 경영 전략은 가능한가? 우리가 원하는 성장은 어떤 성장인가?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그래서 나는, 엘에스의 선택에서 한국 경제의 미래를 가늠한다. 한국 기업은 병든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행복한 미래로 향할 수 있을 것인가? 기업과 사회는 상생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에서 진심으로 책임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기회를 찾는 기업 경영 전략은 가능한가? 우리가 원하는 성장은 어떤 성장인가?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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