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불문학자 김붕구 선생이 세상을 뜨기 전에 쓴, 더 정확히 말하면 그 긴 투병생활을 하기 전에 쓴, 그러니까 1960년대 말에 쓴, <한국의 대학생들>이라는 수필이 있다. 그 시절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나마 형편이 조금 나은 편에 속하는 대학생들까지,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지 그 실정을 조목조목 들추어내는 이 글은 선생의 열정적인 문체와 현실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이 어우러져 이상한 시정을 자아냈다. 소를 팔아 대학에 들어와서도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하는 시간이 공부하는 시간보다 더 많다. 서울 생활이 어려워도 고향의 가족을 생각하면 늘 죄의식에 사로잡혀 살아야 한다. 책과 현실의 괴리는 큰데 현명한 말을 해주는 스승은 없다. 이런 내용들을 줄줄이 열거하고 나서 선생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아 그리고 군대에 가야 한다.”
내가 40년도 넘게 이 글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 “아 그리고 군대에 가야” 할 사람으로서 감동이 컸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던 공부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군대를 마친 선배들의 ‘모험담’을 나는 너무 많이 들었다. 그 시절 군대의 폭압적인 질서와 열악한 복무 환경도 두려웠지만, 폐쇄된 조직 내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온갖 비리가 나를 더욱 떨게 했다.
나는 무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로 현역 복무를 마쳤지만, 정말로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 건의를 묵살한 상급자의 실수로 내가 일주일간 영창생활을 해야 했던 것은 작은 일화일 뿐이고, 정작 크게 입은 상처는 누구에게도 고백할 수 없는 종류에 속한다. 전역 후에 재향군인회가 내 의사와 관계없이 나를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내 의사와 전혀 다른 정치적 성명을 발표할 때, 내가 느낀 모욕감도 그 고통의 연장이었다. 그런 중에도, 심신이 건강한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누구도 빠짐없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한다는 생각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그 생각은 내가 당하는 고통을 우리가 함께 나누는 고통으로, 그래서 견딜 만한 고통으로 바꿔준다.
세상도 군대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군대 문제는 여전히 젊은이들을 괴롭힌다. 대학에 입학한 남학생들이 한두 해를 방황 속에 허송하다가 ‘복학생 아저씨’가 되고 나서야 공부에 전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군대생활이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군대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우리에게서 군대 문제는 많은 모순을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기는 쉽지 않다. 우선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 이데올로기도 있지만, ‘누구나 다 겪는 고통’이라는 생각도 군대 문제를 의제로 내걸 수 있는 길을 막는다. 방위산업체 근무자나 이공계 대학원생들, 특별히 국위를 선양한 젊은 인재들에게 군 입대를 면제해 주는 정책도 사실상 의제화의 길을 막는다. 그러나 ‘누구나’가 실은 ‘누구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억눌렀던 의제는 가짜 의제가 되어 폭발한다. 가수 유승준씨의 경우는 군대 문제가 전면에 걸려 있었지만, 최근에 미국으로 돌아간 가수 박재범씨의 불행에도 그 이면에는 ‘누구나 겪는 고통’에서 면제된 사람에 대한 원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세계관에 반해서 군대에 입대하기보다는 차라리 감옥행을 선택하는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내가 그들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는 그들의 용기와 희생이 자주 원한 폭발의 형식으로 나타나는 가짜 의제를 마침내 진짜 의제로 바꿔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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