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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정운찬 총리의 위험요인 / 박창식

등록 2009-09-08 20:52

박창식 정치부문 선임기자
박창식 정치부문 선임기자
정운찬 총리 후보자 발탁은 이명박 대통령한테 여러모로 좋은 카드다. 비판자를 끌어안는다는 모양새가 좋고, 충청권 민심을 얻는 데도 유리하다. 박근혜 전 대표가 독주하는 여당 차기 구도를 견제하는 뒷맛도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정치적 이점을 누리는 것과, 정 후보자가 일을 잘해 ‘성공한 국무총리’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오히려 ‘정운찬 총리의 길’에는 위험요인이 다분하다.

첫째로, 정 후보자는 실력을 발휘하도록 일할 기회와 권한을 부여받을 가능성이 극히 적다. 이 대통령은 집권 초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국무총리의 권한을 대폭 축소했다. 과거 국무조정실과 비서실 양대 조직으로 짜였던 보좌기구를 국무총리실 하나로 줄였으며, 법적 직무에서 ‘정책조정’을 삭제했다. 노무현 대통령 때 시도된 청와대와 총리실간 분권형 국정관리 실험은 중단됐고, 모든 정보와 업무는 청와대로 집중됐다. 이런 가운데 한승수 현 총리는 “자원외교에 주력하겠다”며 몸을 굽히고 기어다니다시피 했다. 이 대통령이 권한을 독점한데다, 본인의 무소신이 겹쳐 역대 최악의 총리상이 나타났다.

둘째로, 총리와 대통령 사이의 인간관계도 중요하다. 이해찬씨는 근래에 보기 드문 ‘실세 총리’ ‘일하는 총리’를 했다. 방폐장을 비롯한 굵직한 사회갈등 과제들을 재임중에 해결했으며, 참여정부 기간 중 가장 안정적으로 국정을 관리했다. 당시 총리실은 “청와대가 일을 너무 많이 넘긴다”며 비명을 질렀다. 노무현 대통령은 “(총리와) 천생연분이고 나는 참 행복한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5선 국회의원의 내공과 오랜 동지적 관계에서 쌓인 신뢰가 원동력이었다. 대통령과 총리가 수시로 툭 터놓고 대화함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정 후보자도 이 대통령과 ‘친한 사이’라고 한다. 대선 때 후보 선대위원장, 대선 직후 인수위원장 자리를 제안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정 후보자와 이 대통령의 인연은 서울시장-서울대 총장 때 서울대 앞 고가도로 공사 민원 때문에 처음 만났고, 그뒤 간간이 식사모임 등을 이어온 형편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서로 호감과 친근감을 느꼈을 법하다. 하지만 오랜 세월 일을 함께 하면서 가치를 공유해온 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총리 시절도 생각해볼 대목은 있다. 이회창 총리는 내내 김영삼 대통령을 상대로 권한과 소신을 내세우다가 127일 만에 물러났다. 통일정책조정회의 관여 문제가 불거진 까닭인데 사퇴 직후 대통령이 해임한 거냐, 총리가 항의사퇴한 거냐를 놓고 관측이 분분할 정도였다. 어쨌든 그는 특유의 결기를 발휘함으로써 나름의 정치적 자산을 만들었다. 정 후보자는 원만하고 온유한 성품이 장점이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경우 ‘강기’를 발휘할 수 있을지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그는 2007년에 대선주자 행보를 하다가 “정치세력화를 추진해낼 만한 능력이 부족하다”며 포기한 적도 있다.

이 대통령은 정 후보자의 이미지를 취하고자 했고, 그는 그대로 필요에 따라 판단을 내렸다. 기왕에 선택했고 청문회를 거쳐 취임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에 이바지하는 좋은 총리가 되어주길 바란다.

그러나 자신을 둘러싼 위험과 제약요인이 만만찮다는 점은 잘 알아두는 게 좋겠다. 그가 실제로 새롭게 벌여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동안 경제정의와 사회정의를 두고 해왔던 수많은 말들이 헛말이 되지 않도록, 그 자신이 자세를 가다듬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박창식 정치부문 선임기자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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