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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끈기와 재미의 정치 / 박창식

등록 2009-09-01 21:35수정 2009-09-03 00:26

박창식 정치부문 선임기자
박창식 정치부문 선임기자




민주당의 천정배, 추미애, 최문순 세 국회의원이 7월31일에 시작한 언론악법 무효화 거리서명 운동을 한달 넘게 계속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기간과 폭우가 쏟아졌던 날을 제외하곤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이들은 매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서울 명동성당 앞에 두 개의 좌판을 놓고 시민 참여를 권유하고 있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으나 하루 1000~1500명꼴로 9월1일까지 3만명은 넘었으리라고 한다. 제법 많다.

기자는 현장을 찾아갔다. 첫째 특징은 20~30대 젊은층이 장년층보다 적극적이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선선히 권유에 응해 서명에 참여하고 있었다. 둘째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적극적이었다. 데이트 중으로 보이는 커플 가운데 여성이 머뭇거리는 남성의 손목을 이끌고 서명 좌판에 다가서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지난해 촛불 국면 당시 여고생과 젊은 주부들이 대거 집회에 등장함으로써, 여성의 높아진 사회참여 의식이 관심을 끌었는데 비슷한 흐름이 명동성당 앞에서도 나타났다.

[하니TV] 박창식 기자가 만난 거리의 ‘정치IN’

분위기는 밝았다. 유머러스하기도 했다. 특히 여성 정치인으로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추미애 의원한테 즉석사진을 함께 찍자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젊은 커플이 추 의원을 가운데 두고 사진을 찍는가 하면, 아기를 안고 나온 부부도 사진을 함께 찍었다. 추 의원은 마이크를 잡고 서명을 권유하는 시간이 절반이고,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시간이 절반이었다. 천정배 의원은 어느날 ‘언론악법 쥐’를 잡는다며 얼굴에 고양이 수염을 그리는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1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천 의원은 평소 딱딱한 이미지다. 그의 변신을 찍은 사진은 포털 검색순위 상위권을 차지했다.

천, 최 두 의원은 언론관련법 강행처리에 항의해 국회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상태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수리하진 않았지만, 최문순 의원은 기자의 물음에 “의원 세비 수령계좌 폐쇄를 비롯해 내가 할 도리는 다했다”고 말했다. 두 의원의 보좌관·비서관들은 실제로 면직 처리가 됐다. 이들은 무급 상태로 현장에서 서명운동을 돕고 있다.

이들은 ‘거리 정치’ 한달여의 느낌을 묻자 “자신감이 늘어난다”고 답했다. 보수화되거나 정치에 무관심하리라고 여겨온 20~30대들이 적극적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또한 언론관련법 쟁점은 일상생활과 무관하고, 전문적이어서 어렵다고 하는 가설도 이곳에선 기각됐다. 그래서 “헌법재판소가 무효화 결정을 내리도록 압박하고자 최소한 100일은 서명운동을 계속하겠다”(최 의원)고 했다.

이들의 활동에선 ‘끈덕진 맛’이 느껴졌다. 한번 목표를 정하면 어느 정도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밀고 나간다는 이야기다. 그러다 보면 진정성이 전달되기 마련이다. 이들이 끈기를 발휘하는 데는 유머와 재미라는 요소도 중요했다. 그래야 우선 하는 사람이 지치지 않으니까…. 투쟁의 구호만 목청 높여 외치는 것으로는 오래 끌고 가기 어렵다.

민주당 지도부는 언론악법 원외투쟁을 벌이다가 정기국회 등원을 결정했다. 원외활동도 병행한다고는 하나 진작부터 맥은 빠져 있었다. 이렇다 할 결과나 국면 변화도 없는데 기수를 돌리기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 때에 이어 두 번째다. 전략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끈덕진 맛도 보여주지 못하다가 제풀에 지쳐 주저앉는 느낌을 준다.

이들 세 의원의 명동성당 서명운동은 당 차원의 프로그램과 달리 자신들이 알아서 펼치는 ‘별동대’ 성격이다.

박창식 정치부문 선임기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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