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호 신부
산촌 오지마을이긴 하나 방문자들이 종종 있다. 먼 길 찾아온 얼굴들은 항상 반갑고 고맙다. 정성으로 대접해야 마땅함에도 초보 농부 생활의 처지가 어려워서 결례라도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대중교통이 좋지 않아서 승용차로 오시는 분들이 자주 있다. 집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어귀에는 작지만 주차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 방문자들은 마당의 방문 앞까지 차를 끌고 들어오는 걸 당연스럽게 여긴다. 아이들이 공놀이나 자전거를 타며 놀고 있어도 상관 않고 비가 올 양이면 흙 마당에 바큇자국이 깊게 패게 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지역의 택배 차들은 짐을 운반하지만 웬만해선 마당까지 들어오지는 않는 예의가 있는데 …. 권정생 선생은 승용차로 찾아오는 이들에게 “할 일이 없어서 공기 더럽히고 다니느냐?”며 혼내시곤 했다 한다. 우린 그럴 만한 통도 없고 섭섭해할까 봐 뭐라 말하기도 거시기하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니다. 생각건대, 예의나 염치의 문제가 아니라 습성화의 문제인 것 같다.
요즘은 소득 수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승용차를 이용하는 게 기본인 시대라서인지 누구나 아파트, 회사, 휴게소 할 것 없이 한 걸음이라도 가까운 곳에 주차하려 한다. 도로나 마당이나 포장되어 있으니 흙 길, 흙 마당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길은 보지만 땅은 보지 못한다. 현대인의 삶이 그러하다.
사람은 습관적인 동물이다. ‘습’(習)이란 몸의 일정한 방향을 만드는 자동 감지기다. 즉 사물을 대하면서 일정한 방향성을 명령하는 몸의 기억이다.
습관이 운명을 바꾼다는 말도 있듯이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의 좋은 습관은 세상을 아름답고 정의롭게 만든다. 승용차는 시공을 단축시켜주는 문명의 이기이지만 건강한 사람과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어떤 습관을 가르치고 만들어내는 물건인지 질문받아야 한다.
공동체 마을로 들어간 후로 대중교통 이용이 제법 자연스럽다. 그러나 마치 객지에서 귀향하는 것이 옛날로 복귀만은 아니듯이, 승용차 이전 생활로의 단순 복귀만은 아니다. 특별한 느낌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발견하고 감지케 해 주고 있다. 오로지 운행에 주목할 시간에 시외버스와 전철에서의 독서, 흔들거림 속에서의 평온한 수면, 출발의 여유, 삼라만상의 구경 … 정말 대단한 것들이다.
모든 구조가 승용차 이용을 전제로 설계된다. 도시의 인도는 장애물로 가득하고 공원과 행사장 접근은 승용차 중심으로 되어 있다. 지방과 지방 간의 교통망은 차라리 서울을 경유하는 편이 더 빠르다. 고속화로 정비된 국도는 보행권을 묵살한다. 철도 노선 신설은 없고 역은 폐쇄되고 있다. 승용차 없는 생활은 불가능한 것인가. 불편하다. 바쁜 시간 많은 업무를 봐야 하는데 경쟁력이 없다 말할 것이다. 그건 인생관의 문제다. 긴 호흡 느린 걸음 청정한 삶에 대한 갈망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우마차를 이용하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승용차 중심의 패러다임을 바꿔볼 수 있지 않느냐!는 제안이다. 그렇지 않고는 녹색성장 구호도 헛것이다. 대중교통 천국은 지상의 많은 국가 도시들에 흔하다. 그러므로 개인은 좋은 습관에 도전할 일이고 국가는 무엇보다 더 이상 고속도로를 뚫지 말 일이다. 운하에 대한 음흉한 기만책도 버릴 일이다.
대안을 생각해 보았다. 저렴한 렌터카 운영사업을 지방 자치단체의 공영사업이나 ‘사회적기업’이 담당하게 하는 거다. 거참, 좋은 생각 같다. 그래? 자가용 대신 단골로 이용해버리면 뭐가 다른데? 성직자란 것들은 겨우 생각한다는 게 망할 궁리만 하지 …. 박기호 신부
대안을 생각해 보았다. 저렴한 렌터카 운영사업을 지방 자치단체의 공영사업이나 ‘사회적기업’이 담당하게 하는 거다. 거참, 좋은 생각 같다. 그래? 자가용 대신 단골로 이용해버리면 뭐가 다른데? 성직자란 것들은 겨우 생각한다는 게 망할 궁리만 하지 …. 박기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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