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기후변화 못지않게 지금 인류사회를 짓누르는 것은 식량위기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다. 따져보면, 식량위기의 첫째 원인은 국가권력과 자본의 농사에 대한 근본적인 무지이다. 농사는 무엇보다 자연에 대한 존경심 없이는 불가능하다. 좋은 농사에는 비옥한 땅과 적당한 기후와 농촌공동체의 축적된 지혜가 불가결하다. 그런데도 그동안 농사는 단지 이윤증식 수단으로 간주되어, 엄청난 농약과 화학비료와 기계가 투입되고, 비옥한 농토가 도시화·공업화를 통해서 급속히 축소·소멸되어 왔다.
그 결과가 걷잡을 수 없는 식품오염과 전염병, 농토의 사막화, 수자원의 급속한 고갈이다. 이대로 가서는 조만간 온 세계가 대재앙에 직면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2007~2008년 사이 세계 전역을 휩쓴 식량대란의 근본 원인은 지금 누적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어떤 식이든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지금 한국 정부는 해외농지 확보 말고는 실질적인 농업대책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2008년 초 정부는 해외농지 취득 촉진 국가계획을 발표한 이후 대기업에 의한 해외농지 확보를 장려해왔고, 그 결과 여러 대기업이 지금 아프리카, 남미, 중앙아시아, 러시아, 몽골 등에서 대규모 농지를 취득하는 데 꽤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과연 옳고 지속가능한 대책인가.
이 점에서 ‘대우로지스틱스’에 의한 마다가스카르 농지 130만 헥타르의 99년간 무상 임차 계획은 눈여겨봐야 할 사례이다. 이 계획은 실패로 끝났지만, 상당 기간 국제 여론에서 주목받아왔다. ‘대우’는 마다가스카르 전체 농지의 절반에 해당하는 이 농토에서 옥수수와 팜오일을 생산하여 한국으로 들여올 계획을 하고, 현지 정부와 거의 계약 완료 단계까지 갔다고 한다. 이 계획은 작년 말 영국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에 의해 처음 알려진 이후 국제 여론에서 ‘신식민주의적’ ‘토지약탈’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공격을 받아왔다. 일부 국내 언론도 보도를 하기는 했으나, 그 시각은 한국의 해외진출에 대해 외국인들이 ‘심술’을 부리고, ‘의도적인 왜곡보도’를 하고 있다는 식이었다.(<조선일보> 2009.3.21)
그러나 국내 언론이 보지 않은 좀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자기 나라 농토의 절반을 무상으로 외국 기업에 빌려주는 데 합의한 마다가스카르 정부가 극도로 부패한 독재정부라는 사실이었다. 자기 소유 회사를 따로 갖고 있던 이 나라의 대통령은 “국가를 마치 자신의 회사처럼 운영하고, 국민을 종업원 대하듯이 하는” 사람이었다.(<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09.4) 신자유주의 정책을 완강히 밀어붙이며, 해외 투자자를 적극 유치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은 온갖 편법을 동원하여 사리사욕을 취했다. 대규모 농토를 외국 기업에 넘겨주는 협약을 맺으면서도 당국은 현지 주민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 협약 완료 직전 유럽 언론에 의해 이 계획이 폭로되었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반정부 시위가 발발하여 많은 인명이 희생당한 끝에 군부가 들고일어나 정권이 교체되고, ‘대우’의 프로젝트는 사실상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비록 실패했으나 ‘대우’의 경우는 하나의 전형이지 예외적인 게 아니다. 해외농지라는 것은 결국 식민지 혹은 반(半)식민지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윤리적으로, 정치적으로, 또 생태적으로 매우 용납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여의도 면적의 30배나 되는 국내 농지가 해마다 사라지는 이 터무니없는 상황부터 바로잡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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