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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민주주의 위기와 지도자의 덕목 / 백기철

등록 2009-08-12 20:20

백기철 국제부문 편집장
백기철 국제부문 편집장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진보개혁 진영 안에 어느 때보다 단결의 기운이 높다. 보수 여권의 언론법 강행처리까지 겹치면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절감한 탓이다. 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각종 논의도 활발하다. 야권의 중견 정치인들이 최근 공·사석에서 “당의 수위라도 맡겠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맥락일 터이다. 논의의 중심은 당면한 10·28 재보선과 내년 6월 지방선거, 멀게는 2012년 총선·대선과 맞닿아 있다.

진보개혁 진영 인사들은 ‘연대’와 ‘헌신’이 현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는 데 대부분 공감하는 것 같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 기간 동안 이미 밑으로부터 연대의 싹은 텄다. 지역 내에서 친노건, 진보정당이건, 민주당이건, 시민단체건 가릴 것 없이 자연스레 빈소를 함께 마련했다. 며칠 밤 며칠 낮 밀려오는 문상객들을 함께 맞으며 비록 몸은 고달팠지만,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다가오는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진보개혁 진영은 어떻게 연대와 헌신의 씨앗을 뿌릴까? 김구 선생이 상해임시정부를 지키는 문지기라도 하겠다고 했을 때의 심경이 지금 민주주의의 위기를 목도하는 이들의 마음일 것이다. 김구 선생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정치권에 많아졌으면 한다. 기존 정치권의 인물이든, 새로 정치권에 뛰어들 인물이든 격식이나 자리 따지지 말고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새 인물의 정치권 진입 방식도 크게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외부 인물을 끌어들이는 방식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능력이 있고 뜻이 있다면 재보선이든 지방선거든 도전해서 검증받고 이후를 도모하면 된다. 꼭 공직 후보로 나서야 하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면 된다. 투신의 장은 어디든 좋다. 각자의 장에서 연대의 전망을 품고 각개약진하면 된다.

우리 정치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같은 이가 뚝 떨어지진 않겠지만, 오바마처럼 되려고 노력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를 두고 지난 대선 이후 말도 있었지만, 신념을 가지고 도전했다는 점에서 그를 평가할 대목이 있다고 본다. 96년 총선에 출마한 서경석 경실련 사무총장의 경우도 비록 실패했지만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오염시켰다고만 볼 일은 아니다. 박원순씨나 정운찬씨 등 진보개혁 진영 일각에서 수혈 대상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이들 사례를 참고할 대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 정치인 중에서도 오바마 같은 이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연대와 헌신은 엄혹한 시기에 지도자의 덕목이자 검증조건이다.

연대의 틀에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 같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씨네21>과 한 인터뷰에서 ‘짝퉁-명품 정당론’을 언급한 적이 있다. 진보정당들이 짝퉁(열린우리당)이 망해야 명품(진보정당)이 팔린다는 전략을 구사해 정서적 반감이 있다. 하지만 그들 주장이 정의롭기에 존경심이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의원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자신이 ‘친노’임을 고백했고, 친노 인사들은 그를 가장 주목해야 할 현역 의원 중 한 명으로 꼽는다. 민주당도 원하든 원치 않든 조만간 대개편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대연대’의 모색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을 것이다. 결국 연대가 무산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길이 없다. 차이는 좁히고, 공통점은 키우는 수밖에. 그 길이 바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좀더 성숙하고 품격 있는 국가로 가는 지름길이다.

백기철 국제부문 편집장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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