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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텔레비전과 민주주의 / 김종철

등록 2009-07-24 19:46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지금 이 나라의 정부와 여당이 하는 일에 합리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른바 미디어법을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저토록 광포하게 밀어붙이기 전에 국가경영을 위임받은 집단으로서 국민에게 최소한의 합리적인 설명을 할 책임이 있는 게 아닌가. 하기는 ‘일자리 확충’이라는 명분을 내걸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근거도 없고, 따라서 그들 자신도 믿지 않는 거짓말이라는 것은 국회의장의 ‘솔직한’ 발언이 아니더라도 이미 명확히 드러난 일이다.

이번 소동에서 제일 우스꽝스러운 것은 여당 의원 다수가 미디어법 개정안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투표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판국에 국민에 대한 ‘설명 책임’을 이행하라는 것은 애당초 무리한 요구였다. 그러나 ‘설명 책임’을 방기한 국가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한 권력이 분명하고, 정당성을 결여한 권력이란 거대 폭력조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단지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고 해서 국가권력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권력의 정당성 여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척도는 국가권력이 공공선 혹은 공익적 가치를 위해서 권력을 행사하느냐 않느냐에 있다. 미디어법이 개정되어 신문-방송 겸영이 허용되고, 재벌방송국이 성립된다고 할 때, 그것이 장차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각적·심층적인 고려가 선행되어야 했다. 전자 미디어의 위력을 생각할 때, 공익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국가권력이라면 그것은 당연한 의무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집권 이래 기득권 세력의 사적 이익을 옹호하는 데는 열심이되 국가권력의 공공성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일관된 자세를 이번에도 그대로 드러냈을 뿐이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텔레비전이라는 매체 자체의 유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많은 증언이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텔레비전이 아동의 두뇌 발달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50년 넘게 연구해온 미국의 과학교육가 칠턴 피어스의 입장은 매우 강경하다. 피어스에 의하면 미국을 망치는 가장 큰 원흉이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은 사람의 상상력을 위축시키고, 아동의 정서적·지적 능력의 정상적인 발달을 가로막고,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파괴한다. 텔레비전은 매체의 성격상 끊임없이 자극적인 장면을 송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때문에 폭력과 섹스가 단골 소재가 되기 쉽다. 이런 원시적 자극에 계속 노출되면 사람의 뇌가 조건반사적인 반응을 강요당하면서 공격적인 성향이 과도하게 발달하게 된다. 오늘날 미국에서 갈수록 아동의 자살률과 일반 범죄율이 높아지며 시민들의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일차적으로 텔레비전 탓이라고 피어스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텔레비전을 없앨 수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매체의 위험성을 깊이 인식하면서,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이다. 그러한 노력은 첫째 텔레비전의 상업성을 가급적 제한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 바쳐져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텔레비전의 생존이 거의 전적으로 광고시장에 매달려 있는 현실에서 가만 내버려만 둬도 텔레비전은 상업주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그 막강한 위력 때문에 텔레비전은 개인과 공동체의 건강을 뿌리째 망가뜨리는 무서운 파괴력이 될 것이다.

이 파괴력을 제어하는 게 국가의 임무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국가권력은 텔레비전의 상업성을 오히려 강화하고 확대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들의 궁극적 목적이 ‘국민 총치매화’를 통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물겠다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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