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규 성공회대 교수·경제학
감세니 증세니 하는 논란으로 정부정책이 뒤죽박죽이 되고 있다. 정책 수장이 하루는 법인세와 소득세의 추가인하 유보를 검토한다고 했다가 또 하루는 계획된 감세를 그대로 시행하겠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급기야 모두 다 일리가 있다라고 하고 말았다.
우선 정부가 일하는 방식이 국가정책의 근간인 조세정책을 다루는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거칠고 조급해 보인다. 현 정부를 지지하는가 아닌가와는 무관하게 안타까운 일이다. 갖가지 방안이 여과되지 않은 채 아무 준비 없이 노출되고 있다. 감세 유보든 감세든 그 필요성과 긍정적·부정적 효과를 충분히 검토해서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합의에 이를 수 없는 논란만 증폭시킨다. 이 정부의 집권공약 가운데 핵심이었던 “감세로 경제 살리기” 자체를 집권 이후 충분한 재고민과 재검토 없이 맹목적으로 성급하게 몰아붙인 것과 맥이 닿는 일이다. 더구나 “중도실용, 친서민 행보”라는 정치 기획과 맞물려 내용과 다르게 “서민 감세”라는 정치 선전에 갖다붙이려 했으니 혼선은 더 커졌다. 6월에 제안된 정부의 재정건전화 방안에서 근로자·농어민 지원이 44.6%를 차지하는 비과세·감면 조항의 축소와 술, 담배 같은 상품에 대한 소비세 증세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반면 재정 위기의 중요한 원인인 기존 감세 문제에 대한 재평가는 소홀히 했고 형평에 맞지도 않았다. 세제 방향성의 근간이 되는 법인세와 소득세는 나 몰라라 하고 본질적으로 역진적인 소비세를 건드렸으니 뿌리는 놔두고 주변에만 증세하겠다는 꼴이 되었고, “서민 증세”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소득세와 자산세 감세를 되돌리거나 유보하지 않고서는 세수 증대 효과가 미미할 것이 분명한데도, 그러지 못하는 것은 현 집권세력이 집권 공약에 집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앞으로도 소득세와 재산세를 늘리지 않으려면 소비세에 눈길을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근원은 좀더 깊은 데 있다. 최근의 글로벌 경제위기 이전까지 미국식 금융화나 자산 경제(stock economy)를 추구해야 할 모델로 삼았던 대부분의 국가에서 노동소득 내 양극화가 커졌고, 노동소득에 비해 자산소득의 비중이 현격히 증가했으며, 많든 적든 주식을 소유한 국민가계의 비중이 뚜렷이 증가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산시장의 신호가 정부 행정의 방향과 규모, 기업의 투자 방향과 크기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주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재테크에 매달린 개인들의 소비 양상과 생활 양식을 규정하게 되었다. 즉, 국민 다수가 정부까지 포함해 투자자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사회적 부를 기업과 자산 소유자에게 이전시키는 조처(예를 들어 법인세나 자산세의 감세)를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유권자의 수가 증가했다. 반면 빈곤 해소와 재분배를 위한 재원 조달을 요구하는 사회계층의 뜻은 정치적으로 관철하기가 어려워졌다. 또한 적립금을 자본시장에서 운용하도록 되어 있는 퇴직 연금제나 연기금의 주식 투자 증가는 사회 내에 자본시장 친화적인(즉 법인세와 자산세의 감세를 지지하는) 정치적 보수층의 수를 급격하게 확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우리 국민도 지난 십수년간 재테크 붐과 비정규직 증가에 따른 양극화라는 방식으로 이와 유사한 과정을 겪어왔다. 이번 증세, 감세 논란의 결과는 우리 사회의 정치 지형에서 투자자 유권자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수화의 정도는 어떤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글로벌 경제위기 이전의 시대착오적인 과정을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위기 이후 영미 사회를 포함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기반성과 새로운 사회질서의 모색에 동참할 것인지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단서가 될 것 같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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