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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파시즘 경고와 언론법

등록 2009-07-12 19:59수정 2018-05-11 16:05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칼럼
지난 1일 인권연대 10돌 기념 강연에서 리영희 선생은 우리 사회가 파시즘 초기 단계에 들어섰다고 지적했다. <거대한 전환>의 저자 칼 폴라니는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 인간을 부정하는 게 파시즘이라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권을 파시즘 정권으로 볼 것이냐, 경찰 독재로 볼 것이냐의 논란은 학계의 몫으로 남겠지만, 우리로선 파시즘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가볍게 넘겨선 안 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바라보는 세상은 영혼 없는 시장경제와 돈이 인간과 사회를 지배하는 사회인 게 분명해 보인다. 오는 20일이면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반년이다.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한 주검들은 차가운 영안실에서 인간 영혼이 실종된 사회를 증언하고 있다. 철거민들은 법 바깥에서 활개 친 용역 깡패들에게 쫓겨 망루에 올라 정권과 시민사회에 억울한 사정을 알리고자 했는데, 범법자인 양 경찰 진압작전의 대상이 되어야 했고 참화를 당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국민을 대상으로 진압작전을 벌이는 정권, 그것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짓밟은 행위였다. 정상 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참사 현장을 찾아 원혼들과 유족들에게 사과하는 대신 재래시장의 어묵 파는 집을 찾아 떡볶이를 사먹으며 대형마트를 규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진정성이 없는 만남이지만 이미지들은 신문 지면과 방송에서 요란스레 춤을 춘다.

3000쪽의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뻔뻔스러움은 그들에게서 사회적 약자들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지향의 인간 영혼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공개한다. 이른바 ‘서민 행보’를 하고 민생과 중도를 말하지만 진정성이 없다는 점을 그들 스스로 알기 때문일까, 비판의 목소리를 공권력으로 억압하는 동시에 <한국방송>(KBS) 사장 해임 사태, <와이티엔>(YTN) 노조원 해고와 기소에서 보듯 언론 장악을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그들은 2만1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며 언론법을 민생법안이라고 주장했다. 비정규직법 시행과 관련하여 그들이 주장했던 ‘100만 해고설’처럼 순전한 거짓이었다. 그 수치가 국책연구기관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발표한 잘못된 통계치에 근거한 거짓 보고서를 기준으로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막무가내로 이번 회기 통과를 꾀하고 있으며, 김형오 국회의장은 직권상정을 기정사실화한 발언을 하고 있다. 그들이 내심으로 바라는 바인 <문화방송>(MBC) 대신 ‘조중동+대기업’ 방송이 들어설 때 그들의 표상인 뻔뻔스러움과 거짓은 드러나는 대신 그럴듯한 이미지로 포장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민생 나들이처럼.

사람은 태어났을 때 비어 있던 의식세계를 사회화 과정을 통해 채워나간다. 그 과정에서 교육과 미디어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주입과 암기 위주 교육으로 제도교육을 장악한 데 이어 미디어를 완전히 장악한다면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줄 모르는 채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매트릭스 체제가 완성될 것이다.

오늘도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세계에는 사회정의나 연대의 가치보다 질서 이념이나 물신주의가 강력하게 주입돼 있다. 용산참사에 맞선 ‘거룩한 분노’가 다만 소수에게서만 발현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앞으로 언론법은 우리들을 거룩한 분노는커녕 분노 자체를 상실한 새로운 유형의 인간으로 만들지 모른다.

언론법을 기필코 막아야 한다. 우리의 인간 영혼을 지키기 위함이며, 파시즘 체제로 다가서는 것을 용인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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