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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노 전 대통령이 떠나는 날에… / 박창식

등록 2009-07-09 20:35

박창식  정치부문 선임기자
박창식 정치부문 선임기자
지난달 4일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대장부엉이’라는 카페가 생겼다. 성형수술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쌍코(회원수 18만명), 화장품 정보를 다루는 화장발(회원수 33만명), 패션 정보를 중심으로 모이는 소울 드레서(회원수 9만8000명) 등 세 카페 회원들을 기반으로 만든 제4의 카페다. 회원들은 이 시국에서 관심이 가는 정치인이 누구인지를 놓고 토론했다고 한다. 그 결과 여러 발언과 행동 전력으로 볼 때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괜찮겠다는 의견이 모여, 그와 소통하기 위한 카페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대장부엉이였다.

20대 여성들이 주축인 카페는 스타일이 독특했다. 이 전 총리한테 무엇이든 물어보자면서 강연·토론 기회를 마련했는데, 참가 희망자는 1만원씩 회비를 내도록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500여명이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의 한 건물 회의장에 모였다. 정치 이력이 긴 까닭에 대중연설 경험이 많았던 이 전 총리도 이날 “정말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한다. 정치에 무관심한 것으로 알려진 20대 여성들이 대거 모여, 정치인한테 질문공세를 퍼붓고 때로 박수갈채를 보내는 일 자체가 특별했다. 알게 모르게 자기 돈까지 써가며 청중을 동원하려 애쓰는 기성 정치권 풍토와 다른 점도 있었다.

카페 회원들은 지난 4일 서울 조계사 들머리에서 모금 바자회도 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와 안장식에 맞춰 추모 광고를 내기 위함이었다. 바자회는 성황을 이뤘고 2000여만원의 판매 수익이 생겼다고 한다. 10일치 <한겨레>를 비롯한 일부 신문에 실린 추모광고의 경위는 이러했다.

10일치 <한겨레>에는 야구 관람을 즐기는 사람들의 동호인 사이트인 베이스볼파크 명의의 추모광고도 실렸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이 치러졌던 지난 5월29일에 이어 베이스볼파크 명의의 두 번째 광고다. 이 사이트는 광고비를 마련하고자 모금 운동을 폈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 때는 이 밖에 ‘듀나의 영화낙서판’ ‘클리앙’ ‘에스엘아르(SLR) 클럽’ ‘피지아르(pgr)21’ ‘디브이디프라임’을 비롯한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가 추모광고를 냈다. 커뮤니티의 성격이나 관심사는 영화, 야구, 사진, 디브이디(DVD) 등으로 다양했다.

새로운 정치 참여 스타일을 선보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조대엽 고려대 교수는 ‘유연 자발 집단’이라고 일렀다. 기존 정당, 사회단체에 비해 구속력이 미약하며 자유롭고 느슨하게 운영된다는 특징 때문이다. 과거 한국의 시민운동이 근대성의 질서 안에 자리잡은 ‘계몽의 패러다임’이었다면, 이제는 탈근대적 ‘자율의 패러다임’으로 바뀌어간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미약한 구속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과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 사건, 대선 때 노사모,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로 이어진 대규모 시민행동에 주요 동력으로 작용했다.

노 전 대통령은 민감한 감수성을 갖고 이러한 시대 변동을 받아들였던 특별한 정치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위로부터의 일방통치가 아니라, 옆으로부터 또는 아래로부터의 협치를 시도했다. 이런 분위기가 토론방, 카페, 미니홈피, 블로그 등 다양한 유연 자발 집단의 형성을 촉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상호 간 관계 맺기와 전자적 공론장에 참여하는 체험 등이 확산됐다.

오늘은 노 전 대통령 49재 겸 안장식 날이다. 그러나 그를 영원히 떠나보낸다고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쌍코와 화장발, 대장부엉이, 베이스볼파크 등이 보여주는, 오늘의 대중적 행동 때문이다. 유연하면서도 유쾌하고 자발적인 이들의 시도 속에서 민주주의 메시지가 되살아나고 있다.

박창식 정치부문 선임기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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