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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과경제] 미래와는 싸우지 말라 / 이원재

등록 2009-06-24 19:38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나는 트위터에 흠뻑 빠져 있다. 중국 벤처기업가 친구와도 트위터로 이야기를 나누고, 노벨경제학상을 탄 폴 크루그먼 교수의 소식도 받는다. 140자 이내의 글을 쓰면, 내 글의 구독자들이 컴퓨터나 휴대전화 등으로 실시간으로 받아 필요하면 바로 답을 준다. 그 속도와 편리함 덕에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대통령이 가입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트위터에 가입하는 과정은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낯설다. 이름과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있으면 된다. ‘본인 확인’ 또는 ‘실명제’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제약이 없다 보니 엄청나게 많은 정보와 의견이 오간다. 실명도 지위도 국적도 따지지 않는, 그야말로 세계인의 의견 교환의 장이 되고 있다.

나는 요즘 인터넷 사용 프로그램을 ‘파이어폭스’로 바꿨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파이어폭스 이용자는 이미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의 23%나 된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만 알던 나로서는 충격적인 수치였다.

파이어폭스는 비영리 재단인 ‘모질라재단’이 만들고 유통시키는 소프트웨어다. 모질라재단은 ‘인터넷은 공공 자원’이며 ‘인터넷에서 개인 정보 및 권리 보호는 필수적’이라는 등 웹의 공공성 실현을 사명으로 삼고 있는 곳이다. 비영리 재단이므로 사업소득은 사명 달성을 위한 활동에 다시 투입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기능 개선이나 확산 속도가 빠르다.

트위터와 파이어폭스는 사실 두 가지 중요한 미래 경제의 코드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자유로운 소통’이고, 둘째는 ‘영리와 비영리의 혼합’이다.

이런 특징은 최근 점점 큰 관심을 얻고 있는 ‘착한 경제’와 코드를 함께한다. 윤리적 소비, 사회책임투자, 지속가능 경영, 사회적기업 같은 현상 말이다. 이들은 그 자체로 사회와 시장이 만나는 현상이다. 또 시민사회와 경제주체 사이 소통이 필수적이다. 시민사회가 기업의 사회적 성과에 대해 토론하고 공론화하지 않고서는, 경영자는 의미 있는 지속가능 경영 전략을 세울 수 없고, 투자자는 사회책임투자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다. ‘윤리적인 것’이 무엇인지가 토론되고 정의되어야 ‘윤리적 소비’를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구의 사례가 시민사회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영미권의 윤리적 소비는 처음에 소비자들의 강력한 불매운동에서 시작됐다. 사회책임투자는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사회운동의 노력으로 도약했다. 외국 사회책임투자지수 구성 때 환경단체나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 사회적기업에 대한 국제 논의에서 ‘풀뿌리 시민운동’의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와 사회가 혼합되는 것이 미래 트렌드인데, 여기서 ‘사회’를 정의하는 주체인 시민사회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전문가 사이에 자주 언급되는 “시장과 싸우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주가가 빠르게 오르는 동안에는, 아무리 그게 거품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더라도 함부로 주식을 내다 팔지 말라는 이야기다. 소신도 중요하지만, 거대한 트렌드에 맞서다간 패가망신할 수도 있으니 조용히 기다려 보라는 뜻이다.


한국에는 어쩐 일인지 낡은 법이나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이런 미래 트렌드를 막으려는 사람들이 자꾸 나타나는 것 같다. 이메일을 뒤지고 공표하거나, 시민사회에 이념의 프레임을 씌우는 사람도 나온다. ‘김정일’과 싸워도 좋고, ‘공산주의’와 싸워도 좋다. 신념이야 자기가 선택하기 나름이다. 다만 충고하건대, 미래와는 절대로 싸우지 말라. 과거는 미래를 이길 수 없다. 가장 불행해질 사람은 바로 미래와 맞서는 당신이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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