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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상상력 또는 비겁함 / 황현산

등록 2009-06-19 19:47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어머니가 전자오락에 빠져 있는 아들을 앞에 앉히고 타이른다. 오락의 폐해를 조목조목 늘어놓고 나서 아이를 설득하는 말이 그럴듯하다. “공부보다 더 재미있는 오락은 없다. 너는 갈수록 규칙이 복잡하고 쉽게 끝나지 않는 오락을 찾는데, 공부가 그렇지 않냐? 갈수록 수준이 높아지고 평생을 해도 끝나지 않고.” 다소곳이 듣던 아이가 대답한다. “저도 그건 알아요. 그러나 다른 점도 있어요. 오락은 이기건 지건 판이 끝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공부는 그럴 수 없으니 아득해요.” 대단한 말이다. 아이는 오락과 공부의 차이를 따지면서, 현실의 삶과 가상세계가 어떻게 다르고, 도박과 노동이 어디서 갈리는지를 꿰뚫어 본 것이다. 유희와 노름은 늘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하지만, 삶과 노동은 이미 이루어 놓은 결과에 줄곧 얽매여야 한다.

한때는 ‘막장 드라마’가 입길에 오르더니, 최근에는 역사극들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다. 특히 역사극 <선덕여왕>의 여러 장면들은 사학자들의 전문적인 고증까지 갈 것 없이 우리가 두루 알고 있는 기본 상식과도 자주 어긋난다. 아직 진위 논쟁이 끝나지 않은 <화랑세기>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고 하더라고 그렇다. 앞으로 여왕으로 등극할 덕만공주가 몽골의 사막에서 벌이는 모험은 흥미롭지만 사실감이 부족하고, 공주의 적대 세력인 미실 일파의 위세를 말할 때는 작가의 상상력이 너무 높이 날아오른다. 그러나 막장 드라마에 대해서건 역사극에 대해서건 드라마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단 한마디 말로 까다로운 사람들의 입을 막는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훌륭한 말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그러나 논의가 거기서 끝날 수 있을까. 아닌 말로 불량색소를 사용해 만든 빵을 놓고 빵은 빵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치수가 맞지 않은 옷을 놓고 옷은 옷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드라마는 빵이나 옷과는 경우가 다르다. 빵이나 옷은 우리의 삶과 곧바로 연결되어 우리의 삶 자체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지만, 드라마는 저 아이의 전자오락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법칙과는 다른 법칙을 가진 별도의 세계이며, 이 현실의 직접적인 억압과 고통에서 벗어난 일종의 해방구다. 현실의 말이 시시콜콜 이 해방구를 간섭하여 그것마저 ‘아득한’ 것으로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오락, 노름, 드라마의 세계는 현실의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 세계이지만, 그 해방구에 잠시 살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이는 운동할 시간을 빼앗기고, 노름꾼은 패가망신하고, 드라마에 넋을 잃은 가족은 솥을 태우기도 한다. 공짜 점심이 없다지만, 해방구도 공짜로는 주어지지 않는다.

다른 의미에서도 공짜는 없다. 전자오락을 하는 아이는 오락의 솜씨가 늘어갈수록 더욱 복잡한 게임을 찾는다. 때로는 게임에 이기기 위해 바친 수고가 현실에서 노동하는 고통을 넘어설 때도 있다. 아이가 게임에서 더욱 많은 덫을 요구하는 것은 게임에서 거둔 승리가 현실에서 거둔 승리와 같은 것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점에서는 역사 드라마도 이 아이를 본받아야 할 것 같다. 드라마가 역사를 앞에 내세울 때는 그 역사의 승리를 되새기고, 그 좌절에서 승리의 약속을 발견하자는 것이다. 하나의 승리 앞에서, 또는 승리의 약속 앞에서 우리는 그 승리가 공정한 것인가를 묻게 된다. 말하자면 주어진 현실의 조건들을 제대로 지켰는지 묻는 것이다. 현실을 현실 아닌 것으로 바꾸고, 역사의 사실을 사실 아닌 것으로 눈가림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비겁하기 때문이다.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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