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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과경제] 이동의 덫에서 벗어나야 / 우종원

등록 2009-06-10 21:42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어느샌가 우리나라는 ‘자유로운 이동’을 과신하는 사회가 되었다. 자원의 자유로운 이동만이 사회의 역동적 발전을 이끌어낸다는 이데올로기가 우리를 지배한다. 말은 제주로 가고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하는 것이다.

실제 우리의 도시화율은 80%를 넘어섰다. 일본이 여전히 67%에 머물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자원이 도시로 이동해 왔는지 알 수 있다. 도시에 온 사람은 이제 ‘서울’에 만족하지 못해 외국으로 이동한다. 미국 내 한국인 유학생 수는 인도·중국·일본을 제치고 3년 연속 1위이다.

하지만 이동이 곧 성장과 삶의 질 향상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이동이 선택지를 넓혀주기는 하지만 사회 구성원의 의욕 및 헌신과 결합하지 못할 땐 부가가치를 창조하기는커녕 비용 증가로 끝날 수도 있다. 지나친 고용의 유동성이 개인과 기업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것이 좋은 예다. 지나친 도시화는 수도권 과밀과 지방의 몰락을 낳는다. 외국유학 역시 편익에 견줘 과도한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

정작 문제는 ‘이동’이 폐해를 유발했는데도 이를 다시 ‘이동’을 통해 어떻게 해보려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다. 그 전형적인 예가 ‘수도권 기업의 지방 이전’을 축으로 하는 정부의 지역발전 정책이다. 갖은 보조금을 지급해 기업을 지방에 이전하면 과연 지역은 활성화하는가.

우리보다 먼저 기업 유치로 지역 재생을 도모한 일본이 반면교사가 된다. 홋카이도 남단의 도마코마이시를 예로 들어 보자. 도마코마이시는 인구 17만의 크지 않은 도시다. 태평양 쪽에 항만을 보유해 입지가 양호하다. 이를 내세워 자동차산업 유치에 전력을 기울였다.

1993년, 대표적인 자동차기업인 ㄷ사가 드디어 이곳에 진출했다. 시로서도 적지 않은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신설 공장의 종업원 수가 그동안 3500명에 이른 만큼 고용창출에는 상당히 기여했다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지역경제와의 관련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ㄷ사가 홋카이도 전역에서 조달하는 부품과 자재는 26%에 그친다. 나머지는 모기업이 위치한 외지에서 가져온다. 가동한 지 15년이 넘는데도 진출 기업의 성장이 지역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는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경험 위에서 도마코마이시는 세 가지 방향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첫째는 지역에 밀착한 성장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옥수수를 이용한 에탄올 생산이나 폐차 재활용 등이 그것이다. 둘째는 ‘작은 고용’을 끈기있게 창출하는 것이다. 시내의 사업체 수는 제조업만 230여개다. 한 사업체당 1명씩 15년간 고용을 늘리면 ㄷ사를 유치한 효과에 필적한다. 셋째는 지역 기업을 구체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기술지원의 경우 ‘테크노센터’가 그 구실을 맡는다.

테크노센터 직원 7명 중 2명이 박사학위 소지자다. ㅅ씨에게 조그마한 지자체의 외곽단체에서 일하게 된 경위를 물어보았다. 명문 홋카이도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그는 수도권의 일류기업에서 5년간 근무한 뒤 유턴(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결행했다. “제가 자란 지역이 잘되면 보람이 있지 않습니까?”


과도한 이동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역 활성화는 기업 이전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자기 지역을 발전시킬 의욕과 능력을 갖춘 핵심 인재가 있어야만 이루어진다. 핵심 인재는 눈앞의 이익에 끌려 ‘서울’로 향하는 이동으로 준비되지 않는다. 애착을 갖고 스스로 머물려는 의지가 있어야만 만들어진다. 우리가 진정 선진화를 바란다면 이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사회 곳곳에서 ‘반유동’(反流動)의 힘을 키워야 한다.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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