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애 사람팀장
‘60살 소녀 화가’ 정상명씨. 그를 알게 된 지 올해로 십 년쯤 됐나 보다. 그는 ‘동강의 비오리’에게 첫 번째 ‘풀꽃상’을 준,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이라는 낯선 환경단체의 대표였다. 어느 사보에서 청탁받은 ‘짧은 인터뷰’를 하러 쉬는 날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갤러리 2층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 그를 취재한 뒤 돌아서 나올 때 내 손에는 어느새 ‘풀씨 회원번호’가 들려 있었다.
한 달 회비 1000원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운동 방식’이 참신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니, 그 자연을 존중하는 뜻을 담아 이 세상 모든 생명체를 대상으로 상을 준다는 발상의 전환도 신선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나도 모르게 ‘감동’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체를 꾸리기 1년 전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남부러울 것 하나 없이 ‘행복한 귀부인’이었다고 했다. 재력 든든한 문화사업가의 아내로, 꽃처럼 예쁜 두 딸의 엄마로, 화가이자 비영리 갤러리 운영자로 오십 평생 순탄한 삶을 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스무 살 된 큰딸을 불의의 화재 사고로 잃었다. 대낮이었는데도 골목길이 막혀 소방차가 제때 접근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슬픔에 잠기거나 원망하는 대신,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다. 나만, 내 가족만 편히 살려는 ‘이기심’과 싸우기로 했다. 그가 선택한 무기는 딸의 이름을 담은 ‘풀씨 퍼뜨리기’였고, 그 방법은 바로 상을 주는 것이었다.
사실 그의 이야기는 지난 십 년 사이 풀꽃운동이 뿌리를 내리며 제법 널리 퍼져 알려졌다. 그래서 얼마 전 그의 첫 산문집 <꽃짐>을 전해 받았을 때 내심 다 아는 이야기려니 싶었다. 그런데 문득 몇 장을 들춰보다 눈길을 붙잡히고 말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껏 그에게 차마 묻지 못했던 한마디, 그 깊은 고통을 어찌 이겨내고, 어쩌면 그처럼 환한 웃음으로 세상을 밝혀줄 수 있는지요? 그가 답을 하고 있었다.
“큰딸은 제가 진 짐들 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꽃짐입니다. … 고단하고 무겁기만 했던 한평생의 짐도 마침내는 꽃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큰딸을 앗아간 화마의 시작은 방 안에 켜둔 작은 촛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촛불을 미워하는 대신 ‘사랑의 불꽃’을 피워 세상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더불어 고통을 치유해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오월, 거리에 다시 촛불이 켜졌다. 아니, 촛불이 다시 커졌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구호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 거리를 뒤덮은 지 1년, 촛불은 한 번도 꺼진 적이 없었다. ‘명박산성’과 물대포와 마구잡이 체포의 위력에 밀려 잠시 사그라든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그러다 ‘가장 충격적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한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는 열기 속에 다시금 타오르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소방수들은 보이지 않는다. 가장 용감하게 앞장서야 할 소방대장은 불길을 외면한 채 더 거센 북풍 몰아오기에 열을 올리는 듯하고, 책임 회피에 급급한 대원들은 불길의 세기나 방향조차 가늠하지 못한 채 ‘추모 광풍’이니 ‘나라 망신’이니 부채질 경쟁만 하고 있다.
누구 말대로 이대로 ‘분노의 촛불’이 ‘광풍’으로 거세지면 우리는 또 한 명의 불행한 대통령을 역사의 제단에 바쳐야 할지도 모른다. 기꺼이 ‘꽃짐’을 지고 나선 어머니처럼, 이제라도 그가 자기 몫의 ‘역사의 짐’을 받아 들기를 바란다. 그래서 국민들과 함께 사과와 위로의 눈물부터 흘리고, 그 눈물로 촛불을 꺼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경애 사람팀장ccandori@hani.co.kr
누구 말대로 이대로 ‘분노의 촛불’이 ‘광풍’으로 거세지면 우리는 또 한 명의 불행한 대통령을 역사의 제단에 바쳐야 할지도 모른다. 기꺼이 ‘꽃짐’을 지고 나선 어머니처럼, 이제라도 그가 자기 몫의 ‘역사의 짐’을 받아 들기를 바란다. 그래서 국민들과 함께 사과와 위로의 눈물부터 흘리고, 그 눈물로 촛불을 꺼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경애 사람팀장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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