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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서민대통령의 부활 / 박창식

등록 2009-05-28 23:06

박창식  정치부문 선임기자
박창식 정치부문 선임기자
한겨레프리즘
엊그제 만난 40대 지인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을 밀어붙인 것 때문에 종종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다음날부터 슬슬 슬퍼지더니, 그동안의 배신감이 눈 녹듯이 사라져가더라는 겁니다. 왜 그의 마음이 바뀌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그의 직장 동료들은 교통편을 전세 내어 봉하마을에 다녀오고자 십시일반 모금을 했다고 합니다. 모금 의논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이런 겁니다. “서민 대통령이니까” “종부세는 잘 만들었잖아” “상고 나와서 대통령 된 것도 애들 교육에 바람직한 거잖아” …. 이것도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야기들입니다.

저는 지난 토요일부터 사흘간 봉하마을 취재를 했습니다. 봉하마을은 모든 여건이 열악합니다. 외진 곳이라 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진입로가 좁다고 차량을 통제하는 통에 꽤 오래 걸어들어가야 합니다. 나중에 나아졌지만 처음 며칠간 조문객들이 음식료품으로 제공받은 것은 컵라면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길게 줄을 서야 했고, 그나마도 물건이 동나 중단되기 일쑤였습니다. 존경받는 지도자급 인사들도 꽤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다른 유명인사의 장례와 비교할 때, 정·관·재계 조문객의 수는 적었습니다. 대신에 엄청나게 많은 서민들이 마을을 찾아, 분향소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섰습니다.

문득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생각도 났습니다. 저는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후보를 누르고 1등을 한 광주대회를 취재했습니다. 그때, 우리 정치사상 최초의 인터넷 팬클럽으로 노사모가 조직된 게 화제였습니다. 저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왜 노 후보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회원 여러 명을 인터뷰했는데 그중 장아무개(당시 37·여)씨는 “노무현님이 상고 출신으로 뒤늦게 고시공부해서 오늘에 이른 게 마음에 든다”며 “나도 대학 진학을 못 하고 뒤늦게 일본어를 공부해 통역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노 후보가 자신과 같은 서민이며, 비주류라서 공감하고 지지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노 후보는 장씨와 같은 서민들의 지지가 폭발한 데 힘입어 대선후보 경선과 대선 본선에서 이깁니다. 이어 그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 국민 참여가 핵심이라는 뜻에서 ‘참여정부’라고 새 정부 이름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임기중에 서민 대통령의 이미지는 사라져버립니다. 대북송금 특검, 화물연대 파업,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 취재 선진화 등의 갈등 현안이 꼬리를 물었고, 그때마다 보수와 진보 세력은 총력 세 대결을 벌였습니다. 이 와중에 노 전 대통령은 이들 세력들과 아옹다옹 다투기나 하는 존재로, 언론을 통해 투영됐습니다. 지난 대선 때는 530만표 차이로 정권을 한나라당에 넘겨준 ‘주범’처럼 취급당했습니다.

이번 국민장을 통해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본디 모습을 되찾아내고 있는 듯합니다. 서민의 희망이며, 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준다는 점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자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이번 행동은 비극입니다. 그러나 이로써 그는 자신이 내걸어왔던 ‘가치’를 복원하고 더 이상 훼손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언론과 무관하게 국민들 스스로가 노 전 대통령을 재평가한다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국민들이 앞서가고 언론은 제구실을 못했으니, 언론도 자신을 성찰해야겠습니다.

오늘은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날입니다. 이제 되었습니다. 모든 짐을 내려놓고 편안히 떠나십시오.


박창식 정치부문 선임기자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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