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삶과경제] 정말로 완화해야 할 사업 규제는 / 이원재

등록 2009-05-20 22:22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삶과경제
정책 당국에서 규제 완화의 목소리가 드높다. 기업이나 자영업자 규제도 대폭 완화하거나 유예한다고 한다. 아예 규제를 모두 모아 280가지 규제를 한꺼번에 ‘적용 유예’한다는 방침까지 거론되고 있다. 사업자에게는 규제이지만 소비자나 사회에는 ‘보호장치’인 경우도 있을 텐데, 목욕물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리는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경제에는 여전히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던 개발독재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터라,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없애야 한다는 원론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실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보다도 시장에서 더 많은 제한과 규제를 받는 사업자들이 있다. 돈을 벌어 매출을 내지만 이익을 남기지는 않는, 비영리 성격의 사업자들이다. 협동조합, 엔지오나 엔피오 등 각종 비영리기관이 그렇다.

예를 들어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경우 취급 품목에 큰 제한을 받는다. 현행법은 생협이 농·임·축산물과 친환경 제품만 취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비자로서는, 주방에서 사용하는 친환경 농산물은 생협 매장에서 살 수 있지만, 그 농산물을 조리하는 조리기구를 사려면 근처 슈퍼마켓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생협으로서는, 개인사업자나 영리 유통기업과 경쟁하는 데 심각한 제한을 받게 된다. 개인사업자가 하는 슈퍼마켓도 자유롭게 어떤 물건이든 가져다 놓고 팔 수가 있는데,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협동조합은 규제 대상이 되어 있는 꼴이다.

금융시장에서도 사생아 취급을 받는다. 은행권은 비영리기관이나 생협 등에 웬만해서는 대출을 아예 해주지 않는다. 영리기업이라면 대출이나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구매나 물류 등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을 텐데 그것도 어려운 것이다.

제도적 지원으로부터의 소외도 빼놓을 수 없다. 기업이 다들 무한경쟁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상당수가 이런저런 제도적 지원을 통해 기틀을 닦는다. 벤처기업, 중소기업 지원이나 소상공인 지원 등이 그것이다. 창업, 사업 운영, 연구개발 등 지원의 틀 안에도 ‘비영리’는 빠져 있다. 같은 사업활동을 벌이고 고용을 창출해도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지원 대상에서 빠지는 것이다.

심지어 생활협동조합의 경우에는 조합원이 아닌 일반 소비자의 이용까지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자유롭게 상업활동을 할 수 있는 주식회사나 개인사업자 등 영리사업자에게는 있을 수 없는 규제다.

이미 비영리적인 사업활동은 우리 경제의 중요한 실체다. 한국노동연구원 자료를 보면, 비영리조직 취업자 수는 1996년 전체 취업자의 11.4%에서 2006년 13.5%까지 늘어났다. 생활협동조합의 경우, 회원 수가 약 40만명을 뛰어넘으며, 매출액은 총 35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주주 중심, 이윤 극대화 경영은 이미 낡은 패러다임이 되어가고 있다. 주주가치 중시 경영의 신봉자이던 제너럴일렉트릭의 전 회장 잭 웰치도 주주가치만 생각하는 경영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고백한 판국이다. 사업활동으로 돈을 벌어들이되 이익을 남기지 않고, 대신 이해관계자를 고르게 만족시키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비영리기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의 경제활동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더 북돋우고 키워야 할 이런 사업을 규제로 발목 잡는 것은 그야말로 ‘바보 같은 짓’이다.


다행히 생협에 대한 규제 가운데 일부를 완화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익보다 사명을 중시하는 사업활동 전체를 장려하는 정책적 배려는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 일단 영리기업과의 차별부터 없애는 게 첫걸음이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우리는 ‘멍청함’과 싸워야 한다 [왜냐면] 1.

우리는 ‘멍청함’과 싸워야 한다 [왜냐면]

배울만큼 배웠을 그들, 어쩌다 ‘윤석열 수호대’가 되었나 [1월7일 뉴스뷰리핑] 2.

배울만큼 배웠을 그들, 어쩌다 ‘윤석열 수호대’가 되었나 [1월7일 뉴스뷰리핑]

2시간짜리 내란이 있냐고? 계엄 선포 자체가 내란죄다 [왜냐면] 3.

2시간짜리 내란이 있냐고? 계엄 선포 자체가 내란죄다 [왜냐면]

윤석열 옹호자들에게 묻는다 [박찬승 칼럼] 4.

윤석열 옹호자들에게 묻는다 [박찬승 칼럼]

[사설] 체포영장 거부하면서 구속영장 응한다는 윤의 궤변 5.

[사설] 체포영장 거부하면서 구속영장 응한다는 윤의 궤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