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승 산업팀 기자
한겨레프리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른바 ‘회전문 인사’에 대한 강력한 규제책을 담은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공직자가 민간기업이나 로비업체에 몸담았다 다시 공직에 복귀하는 오랜 관행에 칼을 댄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이를 두고 “케이(K) 스트리트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케이 스트리트는 로비업체들이 몰려 있는 워싱턴의 거리 이름이다.
오바마 개혁의 첫 출발점이 워싱턴 정·관계의 합법적 로비 관행을 겨냥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바마는 이미 선거유세 기간에 워싱턴의 로비산업을 “안락하고도 강력한 초당적 삼각동맹”이라고 비판하며 개혁을 예고했다. 그중에서도 행정부와 의회, 거대 민간기업 사이를 오가며 ‘검은 거래’를 중개하는 관료 출신 로비스트들이 그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미국에서 로비는 헌법이 보장하는 합법적인 청원권이다. 로비스트는 정치권의 핵심 플레이어 중 하나이며, 언론을 제치고 ‘제4부’라고 일컬어질 만큼 영향력을 행사한다. 거대 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회전문 인사들과 그들의 로비력은 상상 이상이다. 딕 체니는 무기회사의 최고경영자로 일하다 조지 부시의 러닝메이트로 2001년 부통령직에 올랐고, 미국총기협회(NRA)는 아버지 조지 부시와 전 국방부 장관 등을 전담 로비스트로 거느리고 있다.
로비가 허용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회전문 인사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경제부총리와 국무총리를 지낸 인사들이 공직을 맡기 전후 대형 법무법인의 고문으로 일한 전력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공직자윤리법에 퇴직 후 2년 동안 취업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지만, 업무 연관성이 뚜렷하지 않으면 별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금융감독당국 간부들은 아예 퇴직을 몇 해 앞두고 실무 보직을 맡지 않는 방식으로 업무 연관성 규정을 교묘히 피해 간다. 이른바 모피아 출신들은 퇴직 후 산하 기관장 임기를 ‘투 텀’ 보장하는 게 관례였는데, 경쟁이 심해진 탓에 임기를 한 차례 채우기도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한다.
요즘은 민간 영역 진출에 훨씬 더 적극적이다. 과거처럼 법무법인 고문이나 기업체 사외이사, 금융기관 감사 등 한직에 머무는 게 아니라, 직접 최고경영자나 실무 보직을 맡는 경우가 많아졌다. 민간기업의 법무 업무 수요가 늘면서 경제 관료들뿐 아니라 법조인도 대거 가세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옛 산업자원부 장관 출신이 중견 그룹의 사업 총괄 회장으로 갔고, 삼성전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총괄지휘했던 외교부 고위 관리를 전격 영입했다.
과거 퇴직 공직자들은 대부분 일선에서 물러난 뒤 대학이나 연구소, 재단 등에 자리를 잡았다. 개인 연구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조순 전 경제부총리는 “시간이 없어 손을 놨던 공부와 집필을 하는 게 나한테는 제2의 공직”이라고 말했다. 고위 공직자들이 소중한 경험을 살려 민간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하겠다는 선의를 곡해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기업행을 택한 공직자들이 다시 공직에 복귀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렇게 회전문처럼 돌다보면, 이들에게 공익과 사익의 엄격한 구별과 절제를 요구하는 게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얼마 전 삼성행을 택한 외교부 관리는 취임 일성으로 “기업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나라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불과 1년 전까지 국내 통상정책을 총괄했던 공직자의 발언이 맞는지 귀를 의심했다. 훗날 기업 경험을 살려 다시 한번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하면 도대체 어찌해야 할까?
김회승 산업팀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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