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정치부문 선임기자
한겨레프리즘
1년 전 이명박 정부는 위기를 맞았다. 5월 초부터 계속된 촛불시위 때문이었다. 국민들은 정부가 효율성 논리만을 앞세우고, 먹을거리 안전을 소홀히 하는 데 분노했다. 일방통행식 국정운영과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문제도 함께 지적됐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민심과 동떨어진 정국 해법을 택한다. 한나라당은 7월10일 최고위원회를 통해 친박 의원 25명을 입당시키기로 결정했다. 그것도 ‘정국 불안 요인’이었던 것은 맞다. 총선 공천에서 탈락시킨 친박 인사들이 ‘박근혜 깃발’을 들고 뛰어 대거 당선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국민생활에 불편을 주기보다는, 정치인들 상호간에 불편을 느끼는 측면이 컸다. 따라서 친박 복당에 그친 정국 해법은 한계가 뚜렷했다.
이명박 정부는 전열을 정비한 뒤 역주행을 시작했다. 경제위기로 서민 생계가 한층 위협받는 시점에 부자를 위한 종부세 감세를 단행했다. 인터넷을 통해 정부 정책 비판 글을 쓴 미네르바를 구속했다. 살리겠다던 경제는 살리지 못하면서, 민주주의와 사회통합의 토대는 흔들리는 상황이 빚어졌다.
한나라당은 4·29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들을 오만하게 밀어붙인 결과였다. 기자의 분석이 아니다. 한나라당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의 성명서는 이런 측면을 잘 짚고 있다. “국정 기조는 새 정부 출범시 약속한 중도실용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당·정·청은 중산층과 서민들로부터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편향된 정책 기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종부세 감세, 양도세 중과 폐지, 비정규직 노동자 관계법 등 부자들한테는 혜택이 돌아갈지 몰라도 다수 국민들의 생활에는 불편을 주는 문제들이 같은 맥락에서 거론된다.
그런데 청와대와 친이명박계 핵심 인사들은 국정 기조 수정 요구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이들은 ‘부자 편향 위주’라는 지적에도 거부감을 드러낸다. 1년 전 촛불 국면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한때나마 국정 운영 스타일을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태도를 바꿨다. 이번에는 그나마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는 듯한 몸짓조차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당·청 지도부는 또다시 엉뚱한 해법을 들고 나왔다. 친박 그룹의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을 원내대표에 추대하는 카드가 그것이다. 친이-친박 갈등이 선거 패배에 한몫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계파 갈등이 국민생활에 불편을 주는 건 아니다. 따라서 김무성 카드를 비롯한 당내 탕평책은, 국민들이 우선순위를 높게 매겨주기 어렵다. 게다가 계파간 자리 나눔 등 정치공학 인상도 물씬 풍긴다.
김무성 카드는 그나마 박근혜 의원이 반대함에 따라 물건너갈 가능성이 커졌다. 이 와중에 친이-친박 그룹간 삿대질은 더 심해졌다. 친박 쪽에선 “진정성이 결여된 분열 책동”이라 하고, 친이 쪽에선 “그런 제안까지 거절한다면 정말로 무책임한 집단”이란 원망이 나온다. 어쨌든 당·청 지도부로선 꼴이 우습게 됐다.
이 대목에서 정말 의아스러운 것은 국정 기조 쇄신을 제쳐두고 ‘친박 중용’이라는 미봉책만 만지작거리는 당·청 지도부의 발상이다. 지난해 1차 이명박 정부의 위기와 4·29 재보선 패배로, 국정 쇄신 없는 ‘여권 결속’의 한계가 드러났음에도 거기서 교훈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쥔 사람들한테는 보고 싶은 것만 보이기 때문일까?
과감한 국정 쇄신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그 힘과 권위를 바탕으로 친박 비주류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게 정석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본말을 뒤집으려는 당·청 지도부의 발상에서는 희망의 단서를 찾기 어렵다. 박창식 정치부문 선임기자cspcsp@hani.co.kr
과감한 국정 쇄신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그 힘과 권위를 바탕으로 친박 비주류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게 정석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본말을 뒤집으려는 당·청 지도부의 발상에서는 희망의 단서를 찾기 어렵다. 박창식 정치부문 선임기자cspcsp@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