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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스님의 눈물 / 김종철

등록 2009-05-01 21:38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삶의창
도버해협에 해저터널을 뚫는 공사가 시작되기 전인 1980년대 초에 영국의 켄트주 정부에 프로젝트팀이 구성되어 있었다. 어떤 기회에 이 팀이 만든 보고서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한 일본인 사회운동가는 큰 감명을 받았다. 거기에는 터널 공사로 일어날 수 있는 영향과 그 대책들이 놀라울 정도로 꼼꼼하게 설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터널을 통과할 기차가 보통열차일 경우와 특급열차일 경우의 차이, 버스나 대형트럭의 운반 방식에 대한 대책에서부터, 도버역이 세워질 경우 주변의 농촌 경관이 파괴될 가능성이 있는데, 식림이나 다른 방법으로 경관 유지가 어느 정도는 되겠지만 피해 자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도버해협 사이를 왕복하는 페리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선박 운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데에는 이러저러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또 이 지역에 성행하고 있는 행글라이더 비행과 관광사업에도 상당한 피해가 올 것이다 등등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터널을 통해 전염병이 들어올 가능성에 대한 대책, 특히 광견병을 옮기는 박쥐를 어떻게 통제할지에 대한 대비책 같은 것이 상세히 거론되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오랜 세월 난개발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온 한국 사회의 상식으로는 사실 좀 낯설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이런 치밀한 사전 조사는 ‘선진 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즉, 선진 사회이기 때문에 이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치밀하고 다각적인 사전 영향조사를 하기 때문에 그 사회가 선진 사회로 평가받는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터널 공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지율 스님이 결국 대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도롱뇽 소송’ 때에도 그랬지만, 또다시 이 나라의 사법부는 행정 권력을 정당화하고 보강하는 일개 부속기관일 뿐임을 스스로 증명해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가관인 것은 ‘언론’이 드러내는 근본적인 무지와 그에 기초한 건방진 태도이다. 이 판결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른바 유력 신문들은 “환경운동이 국책사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라고 설교조로 말하면서, 지율 스님을 포함한 풀뿌리 환경운동가들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언사를 함부로 내뱉고 있다. 그리하여 한 비구니의 ‘생떼’ 때문에 몇 조원의 국고 손실이 발생했다고, 아무 근거도 없는 허구적인 수치를 다시 들먹이며 몽매주의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지율 스님이 터널 공사 자체를 반대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는 사찰의 산감으로서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아끼는 산과 주변의 생태적·문화적 환경이 무분별하게 파괴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말로 양심적이고 책임 있는 환경영향 평가가 한 번만이라도 실시되기를 원했지만, 속임수와 협잡으로 그 당연한 요구가 계속 좌절되니까 목숨을 건 단식을 결행했던 것이다. 아무리 종교인이라고 하지만, 한 인간이 자신의 개인 문제도 아닌데 목숨을 건다는 것은 오늘의 한국 법원이나 언론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인지 모른다. 그러나 사사로운 이익 개념을 뛰어넘은 고결한 덕행이 조롱받는 사회가 인간다운 사회일 수도, ‘선진 사회’일 수도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4대강 살리기’라는 구호 밑에 전개될 유사 이래 최대의 국토 유린 행위가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낙동강 유역은 빠른 속도로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그 강변의 오래된 나무들이 무참히 잘려나가고 있는 현장에서 지금 스님은 울고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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