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축대가 보기 좋다 / 박기호

등록 2009-04-10 19:18

박기호  신부
박기호 신부
삶의창
산 위의 마을은 경사가 심한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어서 여기저기 언덕이 많다. 평지로 활용하거나 건물을 세우려면 축대를 쌓아야 한다. 주변에 돌이 많기 때문에 모아다 쌓으면 콘크리트 옹벽을 치는 것보다 비용도 들지 않고 자연스러워 보기도 좋다. 축대를 쌓으려면 바위같이 큰 돌에서 호박만큼한 돌에 이르기까지 많은 돌이 필요하다. 돌을 쌓을 때는 층층이 눕혀 놓되 돌이 돌을 걸쳐 누르는 식으로 놓아야 서로 물려서 밀려나지 않는다.

돌에도 얼굴이 있다. 돌을 쌓을 때는 얼굴 되는 면을 찾아 보이는 쪽에 놓는다. 장독을 놓건 나무를 심건 누구나 모양 좋음을 고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미학이다. 튼튼한 돌축대가 되려면 생김새들이 서로 다양해야 한다. 둥그스름한 것, 네모난 것, 길쭉한 것, 모난 것, 구부려진 것 모두 서로 얽혀 쌓아야 한다. 축구공처럼 둥근 돌은 빠지기 쉽기 때문에 쓰임 받지 못한다.

축대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 ‘뒷돌’이다. 돌의 뒤쪽 흙 사이에 채워 넣는 잡동사니 돌들을 말한다. 뒷돌은 빗물이 빠질 때 흙을 보호하고 돌이 밀려나는 것을 방지하는 스펀지 구실을 해서 아주 중요하다. 바위건 호박돌이건 자갈 수준의 돌이건 모두 쓸모를 가졌고 서로 함께 얽혀서 좋은 축대를 이룬다.

공동체는 축대에 쓰이는 돌처럼 저마다 다양한 기질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룬다. 저마다 가진 고유성을 서로 존중하고 받아들여 공동체의 힘을 모아 내야 한다. 국가 사회도 그럴 것이다. 서로 다른 이념과 가치 추구, 다양한 생각과 삶들이 공동의 선을 향해 무리 지어질 때 다양성 속의 일치와 화합을 이루는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얼마 전 축대를 쌓던 날 저녁에 받아 본 신문에는,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교사·학부모들에 관한 기사가 있었다. 참 답답한 일이다. 일제고사식 학력평가란 한마디로 획일적 기준으로 평가하여 서열화하고 경쟁력을 작동시키자는 것일 게다. 학교마다 교육철학과 교훈이 있을진대 어찌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일까? 사이보그를 제작하자는 것인가. 경쟁심이란 본성적이다. 당국이나 학교가 부추기고 나서지 않아도 스스로 자녀에게 칼과 방패를 들려 원형경기장의 검투사로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교육이 할 일은 검술이 아니라 함께 승리하는 축제의 삶을 가르치고, 그런 가치 지향의 숭고함을 강조하는 일이다.

예부터 ‘머리 쓰는 놈은 꾀로 먹고살고, 마음 쓰는 놈은 복으로 먹고산다’고 했다. 경쟁의 교육열도 중요하지만 다른 인생관으로 살게 해주고 싶다는 부모들의 믿음도 존중받아야 한다. 언덕을 떠받치는 축대는 거대한 바위 몇 개만으로 쌓을 수 없다. 세상과 국가 발전을 떠받치는 축대도 소수의 엘리트 집단만으로 이루어낼 수 없다. 줄곧 1등을 차지하면서도 학원 교재 외에는 고전 한 권 읽어보지 못하고, 강사는 많았어도 스승 한 분을 만나지 못하고 성장한 이들이 국가 엘리트 집단에 실력으로 편입된다. 어찌 건강한 의식과 직업윤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 시대 교육의 한계요 비극이다.

교육을 ‘사회화의 과정’으로 정의한다면, 어떤 사회를 말하는 건지 사회가 먼저 평가받아야 한다. 구청 미화원이나 아파트 경비 일을 하는데 학사 학위가 필요한가?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그런 기형적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대졸자가 ‘고졸’이라 학력을 속여 낮추고 이력서를 내는 실정인데 상위 5% 정도 이외의 삶에 대해 무책임하다. 그럼에도 경쟁 교육만을 외치고 있음은 정책의 중증 중복장애 상태다. 복잡한 생각 중의 돌축대는 더욱 아름답다.


박기호 신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도사·목사와 내란 [한승훈 칼럼] 1.

도사·목사와 내란 [한승훈 칼럼]

가스 말고, ‘공공풍력’ 하자 [한겨레 프리즘] 2.

가스 말고, ‘공공풍력’ 하자 [한겨레 프리즘]

분노한 2030 남성에게 필요한 것 [슬기로운 기자생활] 3.

분노한 2030 남성에게 필요한 것 [슬기로운 기자생활]

차기 정부 성공의 조건 [세상읽기] 4.

차기 정부 성공의 조건 [세상읽기]

법원 방화까지 시도한 10대 구속, 누구의 책임인가 [사설] 5.

법원 방화까지 시도한 10대 구속, 누구의 책임인가 [사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