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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과경제] 한은법 개정, 어떻게 할 것인가 / 전성인

등록 2009-04-08 22:01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삶과경제
최근 한은법 개정 논의가 수면 아래에서 진행되고 있다.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은의 최종 대부자 기능, 혹은 좀더 광의의 금융안정 기능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 개정 논의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개정 논의는 지난 10여년 전 한은법을 개정할 때의 논거를 부분적으로 뒤엎는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때 우려했던 문제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 논의의 핵심은 한은법의 목적 조항에 금융안정 책무를 추가하는 것이다. 금융위기의 규모와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유사시 모든 권역의 금융기관을 상대할 수 있는 전천후 안전판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현재 물가안정만이 유일한 정책 목표로 되어 있기 때문에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환율이 급등하는 경우 한은은 수입물가 상승에 기인한 물가불안을 우려하여 통화를 긴축할 수 있는데 이것이 금융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그 결과 환율이 또다시 불안해지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한은법의 목적 조항에 금융안정을 추가하는 것에 찬성한다.

그러나 필자는 한은의 금융안정 책무가 대단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사안임을 강조한다. 우선 중앙은행의 목표를 복수로 책정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중앙은행은 복수의 목표 속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할 수도 있고, 정책 실수를 다른 목표의 추구로 위장할 수도 있다. 특히 금융안정의 경우 거의 언제나 유동성 확대를 수반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경제위기를 가장한 정치권의 경기부양 요구에 시달릴 수도 있다.

다음으로 금융안정 책무를 추가할 경우 한은에게 더 강화된 금융 감독 권한을 부여할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주지하듯이 한은은 통화정책의 목표가 물가안정으로 단일화되면서 은행에 대한 감독 기능을 상실했다. 그러나 그 후 한은은 기회만 있으면 잃어버린 감독 기능의 탈환(?)을 위해 전력을 기울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의 개정 논의에서도 이 부분이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문제의 해법은 무엇인가? 정책 목표와 관련해서는 물가안정을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목표로 존속시키고, 금융안정 책무는 투명한 절차에 의해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명시적으로 체제적 위기임을 선포했을 때에 한해 발동되도록 제한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은은 사실상의 경기부양 요구로부터 자유스럽기 어려울 것이다. 혹자는 이런 정치적 절차를 명기할 경우 신속함을 생명으로 하는 위기 대처 능력이 저하될 것을 걱정하지만 현재의 한은법에도 필요한 경우 한은이 은행은 물론이고 비은행 금융기관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다음으로 한은의 감독 기능 확장에 대해서 필자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법규범상의 문제라기보다는 한은의 자세 문제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은은 필요할 경우 금융감독기구에 공동 검사를 요청할 수 있고 감독기구는 이에 응해야 한다. 물론 현실은 이런 협조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법은 법을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은이 법규범상의 협조 의무가 현실로 정착되도록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대처하는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 과정에서 한은은 이미 상당한 규모의 유동성을 지원했다. 한은이 유동성을 지원하면서 이런저런 조건을 꼼꼼하게 따졌다면 그 어떤 기관도 한은을 만만하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법으로 규정된 협조 의무를 이끌어 낼 책임은 결국 한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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