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삶의창
예전 5·16 쿠데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이었다. 그때 우리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초여름 심각한 가뭄으로 고생하는 농민들을 돕기 위해서 인근 농촌으로 행렬을 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행렬이라고는 하지만, 사춘기 소년들인데다가 저마다 양동이 따위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어지러운 대열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내를 통과해서 교외로 나갈 무렵, 갑자기 군용 지프가 행렬을 가로막더니 검은 안경을 낀 뚱뚱한 육군 장교가 거기서 내렸다. 그는 우리들을 인솔해 가던 선생님을 손짓으로 부르고는 다짜고짜 고함을 치면서 들고 있던 지휘봉으로 선생님의 가슴팍을 밀어붙이고, 마구 때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서 그 광경을 보았고, 선생님은 느닷없는 이 폭력 앞에서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장교는 당시 지역 관할 최고 지휘관이었고, 그가 우리 선생님을 때린 이유는 학생들의 행렬이 무질서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자로 잰 듯한 병사들의 행군 모습에 익숙한 눈에는 우리들의 지리멸렬한 행렬이 참을 수 없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장교는 그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그 학생들의 선생님을 구타함으로써 아직 철없던 사춘기 소년들의 마음에 잊을 수 없는 상흔을 남겨 놓았다. 무엇보다 아픈 기억은 우리가 평소에 존경하고 따르던 선생님이 이 야만적인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끝내 한마디의 항변도 하지 못하는 굴종적 모습이었다.
그날 그렇게 모욕을 당한 선생님은 물론 한 사람의 선량한, 그러나 힘없는 시민이었다. 문제는 그러한 시민이 교사로서, 혹은 한 인간으로서 갖고 있는 자긍심이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는 점이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이 내세운 명분은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교사들의 인격과 자긍심을 무참히 깨부수고도 나라의 교육이 바로 설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날 그 폭행 장면은 오랫동안 내 뇌리에 각인되어, 적어도 내게는 군사정권이라면 곧장 무지, 무교양, 야만이라는 낱말이 떠오르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을 뿐이다.
실제로, 그 이후 30년에 걸친 군사정권은 주체적인 인격과 판단 능력을 가진 민주 시민의 교육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명령에 고분고분 순종하는, 그리하여 병력과 노동력으로 군대와 산업 전선에서 묵묵히 복무할 수 있는 ‘노예’들의 양산 시스템이었다.
그러한 군사정권에 의한 통치가 끝나고 ‘민주화’가 실현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우리는 예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장면들에 계속 부딪히고 있다.
정부가 또다시 말썽 많은 일제고사를 강행하기로 결정하여, 며칠 후 시행하기로 돼 있던 지난 주말 나는 어느 여성 교사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는 이번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교사들의 명단 공개에 자신도 참여할 것인지 고민중인데, 내 조언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의 초췌하고 긴장된 얼굴은 그동안 얼마나 고민이 깊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 정권의 행태로 보아, 아마도 해임까지도 각오해야 할 일에 가담한다는 게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양심적인 교사이기에 직면하는 시련임이 분명하다.
지금 이 나라의 권력은 국민을 노예나 가축으로 보는 예전 군사정권 시대의 교육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시대착오적인 어리석은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인간다운 자존심을 가진 이들은 끝없는 스트레스와 우울 속에서 지내고 있다. 양심적인 한 연약한 여교사가 잠을 못 자고 번민해야 하는 이 어둠이 언제 걷힐 것인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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