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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생각의 틀을 바꿔야 행복해진다 / 박범신

등록 2009-03-20 19:03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삶의창
부산의 한 복합쇼핑몰이 개장하는 날, 붉은색 속옷을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속옷 매장 전체가 아수라장이 됐다는 기사를 읽는다. 붉은색 속옷만 해도 5천여만원어치가 삽시간에 팔려나갔고, 그 외의 여성 속옷도 브랜드별로 1억원씩 매출을 올렸다니, 놀랍다. 속옷을 사러 몰려든 사람들의 사진 속엔 남자들, 젊은이들도 많다. 이유는 ‘개업 점포에서 속옷을 사 옷장에 걸어두기만 해도 온 가족에게 행운이 온다’는 속설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즘은 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부적뿐만이 아니라 역술업계 전체가 호황이라는 말도 들린다. 역술가들도 시시각각 늘어나고, 굿당에선 또 장구소리가 끊일 새 없다. ‘바다이야기’는 아직도 남몰래 성업 중이라 하고, 불황인데도 카지노 같은 데는 매상이 별로 줄지 않는다.

사는 일이 팍팍할수록 요행수에 대한 기대심리가 늘어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부적으로 좋은 일만 불러올 수 있다 하면 누가 부적을 지니지 않을 것이며, 사서 걸어놓기만 해도 가족들이 다 행복해진다는데 누군들 그 ‘속옷’을 사고 싶지 않겠는가.

문제는 이 모든 사회적 현상들 배후에 오직 경제 불황만이 도사리고 있다고 맹신하는 단순무식하고 순진한 단견이다. 보통사람들이야 그렇게 생각한다 할지라도, 정치지도자 그룹이나 지식인 그룹, 나아가 성직자들조차 경제만 좋아지면 삶이 충만해지고 사회계급적인 갈등과 분열까지 다 봉합될 거라고 믿는다면, 아니 믿지 않더라도 어떤 숨겨진 이득을 노리고 그렇게 믿는 듯 외치고 다닌다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그런가.

경제만 좋아지면 모든 비정상적 사회현상들이 극복되는가. 경제만 좋아지면 적과 아군이 한통속 되고 가족과 이웃이 모두 상처 없이 희희낙락 행복해지는가. 그러므로 경제 불황의 극복을 위해선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한다고 해도 다 정당한가.

큰것(大)을 위해서 작은것(小)을 무조건 희생해도 좋다는 논리는 전근대적인 것이다. 아니 그 논리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큰것’이 반드시 ‘경제’라고 한다면 이는 폭력적 논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는 행복의 절대적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 상대적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경제만을 제일의 가치로 여기고 오로지 그것만을 우러러보라고 부추기면서 모든 사람들을 그것의 노예로 만들어온 지도그룹의 대중선동 전략은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 돈을 버는 것은 최종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지 자본의 신을 제단 위에 모셔놓고 그 밑에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행복은 자족 속에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행복이 자기 정체성을 찾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을 알리고 있고, ‘남을 행복하게 하는 자만이 행복을 얻는다’는 플라톤의 말은 행복이 나눔과 헌신과 사랑에서 시작된다는 걸 암시하고 있으며, ‘행복은 번뇌의 소명에 있다’는 법구경(法句經)의 한마디는 행복이 정신적인 안락에서 온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경제는 그 길로 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그런데도 경제가 아니면 행복해지는 길이 전혀 없는 것처럼 선동하여 모든 이를 자본의 노예로 만드는 것은 최종적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데 자본을 통하는 것이 편리하고 또 저항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위기는 경제만의 위기가 아니다. 이미 경제위기가 곧 삶의 총체적 위기라고 생각하도록 오랫동안 길들여져온 우리는, 이 경제 불황을 일시적으로 극복한다 해도 확대 재생산되는 욕망을 계속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여전히 쉴 틈이 없을 것이고 여전히 위기라고 느낄 것이다. 생각의 틀을 바꿔야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의 삶이 팍팍한 것은 경제 때문만이 아니다.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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