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문정인칼럼
지난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방한이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노련미 넘치는 고단수 외교’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감동 외교’ 등 클린턴 장관에 대한 개인적 찬사가 넘쳐난다. ‘한-미 동맹에 대한 의구심 불식’ ‘북에 대한 한-미 공조 강화’ 그리고 ‘남을 통해야만 미국과 통할 수 있다는 통남통미(通南通美) 원칙 재확인’ 등, 이명박 정부의 외교적 기우를 해소시켜준 방한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방한에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그는 이번 방한을 ‘듣는 여행’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1박2일 그의 체한 일정에서 차분히 ‘듣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현 정부와 다른 시각을 가진 이들과의 회동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화끈한 대중연설을 통해 ‘듣기’보다 ‘말하기’에 더 치중하는 정치인의 행보를 보였다. 아직 검토하고 있다는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도 거침이 없다.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이미 답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들을’ 필요가 없었나 보다.
부시 행정부와의 차별성도 찾기 힘들었다.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인식 차이를 제외하고는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한 북한 핵의 폐기”,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 평화 등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전략동맹으로서의 한-미 동맹 심화”, “북한의 폭정과 기아”의 명시적 부각, 그리고 “북-미 관계 개선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남북관계 개선” 등의 발언 등을 고려할 때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 재방한한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준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전 정부의 고압적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균형의 힘’(power of balance)에 기초한 사려 깊은 스마트 파워 외교를 전개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달라 보인다. 북의 권력 승계에 대한 클린턴 국무장관 발언은 결코 사려 깊지 못했다. 북의 승계 정치에 대한 공식적 언급은 금기시되어 왔다. 정확한 정보가 없는데 그러한 언급을 하는 것이 부적절할 뿐 아니라, 북의 급변사태 또는 붕괴를 기정사실화하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재하고 국방위원회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북한 지도체제 변화 과정에서의 긴장 고조’ 가능성에 대해 미국 국무장관이 공식 언급한 것은 북-미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균형의 예지도 보이지 않았다. 클린턴 장관은 “한국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한국을 비난하는 북한은 미국과 다른 형태의 관계를 얻을 수 없다”고 천명했다. 미국이 동맹인 한국 편을 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는가에 대한 성찰과 그 대안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있어야 했다. 남에 대해서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 제대로 된 균형적 외교 포석이 아닌가 한다.
이번 클린턴 방한을 통해 가장 돋보인 부서는 외교통상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외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보수 지지 세력이 원하는 바를 클린턴 장관으로부터 모두 얻어냈기 때문이다. 엇박자 외교를 우려하던 비판세력에 한방 먹인 셈이다. 그러나 그런 외교가 우리의 국가이익에 정말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앞선다. 미국이 압력을 가한다고 우리와 대화에 나설 북이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그럴수록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북의 적개심만 높아지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위태로워질 뿐이다. 김영삼 정부의 실패한 대북 정책에서 아직도 배우는 것이 없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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