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호 신부
삶의창
‘산촌유학’ 운동이 있다. 도시 아이들이 1~2년 정도 농·산촌 학교로 전학하여 생활하는 것이다. 교육이 상품화되고 섭생과 환경 재앙으로 각종 신체 정신 증후군에 고통받는 아이들이 늘어가는 시대에 청정한 자연환경 속에서 순박한 시골 친구들을 사귀며 생활한다. 산촌유학은 공동화로 폐교가 늘어가는 시골 마을에도 활력을 가져온다.
우리 공동체에도 여섯 명의 도시 어린이들이 함께 살고 있는데 ‘공동체 생활유학’이라 부른다. 시작부터 계획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마을 어귀에 분교가 있는데 학생이 줄어들어 통폐합(폐교) 단계까지 갔다. 주민들은 학교를 살려야 한다고 반대했고 교육청은 결정을 보류했다. 학교를 살리는 데 함께 노력할 것이 없을까 궁리 끝에 마련한 것이 생활유학이었던 것이다. 동기가 그러하니 전문가도 프로그램도 없고 단지 우리 아이들과 똑같이 생활하게 해주는 것이 전부이다. 일과도 단순하다. 새벽 미사로 하루가 시작된다. 식사와 청소, 학교는 약간 멀지만 걸어다니다 보니 해찰도 이만저만 아니다. 돌아오면 가축을 돌보거나 소 꼴을 뜯거나 밭일을 돕거나 하면 벌써 저녁식사이고, 기도가 끝나면 숙제나 겨우 하고선 곯아떨어진다.
대부분은 편식이 지독하다. 그러나 한두 달만 지나면 달라진다. 좋아하는 고기나 튀김, 즉석식품류는 거의 없고 푸성귀들만 식탁에 오르니 운동량이 많아 배는 고픈데 굶지 않으려면 제가 어쩔 것인가? 제 손으로 운동화 끈도 묶지 못하지만 간단히 해결된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담당 구역 청소도 깨끗이 한다. 처음엔 밤마다 부모님께 장문의 편지를 쓰며 훌쩍거리지만 한 달이면 끝이다. 닭똥 냄새에 코를 막던 얘들이 닭장에 들어가 날달걀을 꺼내 깨 먹고선 시치미 떼고 나온다.
우리 마을에서는 미사 준비와 반주도 모두 아이들이 한다. 도시에서는 성적이 다소 부족했던 학생들도 우리 공동체로 오면 이내 전교 수석을 하게 되고 못해도 2등은 한다. 한 학년이 한두 명뿐이어서 경쟁할 필요도 없이 모두가 반장 부반장이다. 두 학년이 한 교실에서 복식수업을 하는데 전교생 11명에 교사가 세 분이다. 서너 명이 마주앉아 공부하기 때문에 졸고 한눈팔고 다른 책을 보거나 할 수도 없다. 학생의 성격, 습관, 학습진도 등이 모두 파악될 수밖에 없다.
선생님은 도시 아이들이 학원을 많이 다녀서인지 똑똑하고 예능도 좋은데 시골 아이들에 비해 정직하지 못하고 선생님께도 고집을 부린다면서 좋게 평하진 않는다. 공동체에서도 거짓말이나 욕설을 엄격히 금하는데도 바로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도 부모님들은 자기 자녀가 욕할 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때까지 자녀에 대해 칭찬만 들어오다가 잘못된 점을 솔직히 지적해 주는 선생님에게 무척 당황해한다. 자식농사 헛짓고 있었던 것이다. 산골로 유학 온 것은 아이들인데 새 삶을 배우는 것은 부모다.
고목나무, 기암절벽, 계절마다 변하는 산천과 농작물 모든 것이 학습도구요 놀이터였던 산골에서 어느새 1년을 살고 이제 집으로 간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기능사 자격증’을 안겨준다. 장작 패기 3급, 쇠죽 쑤기, 연탄재 버리기 2급, 기도찬양 1급 …. 이는 대한민국 같은 또래 아이들 중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고귀한 것으로 인생의 어려운 고비에서 스승이 되고 용기를 주는 은사가 될 것이다. 가난하고 작은 것은 아름답고 인격적이고 창조적인 가치로 무궁하다. 사람은 자신의 본래 살아야 할 에덴동산을 찾아야 내가 누군지,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참된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를 배울 수 있다.
박기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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