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정치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과 비정규직 법안 등을 서둘러 밀어붙이려던 태도를 바꾸고 있다. 방송 관련법, 금산분리 관계법 등의 쟁점법안을 놓고도 수정 필요성이 일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국정 2년차 기조와, 2월 임시국회 전략을 정해야 할 시점에서 주목할 만한 흐름이다.
에프티에이의 경우,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진영이 당선 전부터 재협상을 공언했다. 따라서 우리가 서둘러 비준했다가 공연히 외교적 낭패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론자들 사이에서 진작부터 있었다. 예측하지 못했던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으니 금융 분야 등의 협정 내용 중 일부를 재검토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앞뒤 살피지 않고 ‘청와대 총대’를 메고 나섰다가 큰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다. 그러던 끝에 뒤늦게나마 자세를 고치고 있다.
비정규직법은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자, 움츠렸다. 이런 문제는 신중하게 대처하는 게 당연하다. 경제위기에 따른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을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에 관한 문제로서, 자칫 사회적 공감대 없이 밀어붙이다가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 그러니 움츠러들었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2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 몫은 28명이었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달리, 지원자가 16명에 그쳐 미달사태를 빚었다. 용산 참사, 경제난 등으로 민심이 뒤숭숭한 마당에 섣불리 정부를 두둔하다 얻어맞는 일은 피하고 보자는 생각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한나라당의 태도 변화는 홍준표 원내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가 주도하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용산 철거민 참사와 관련해 “이번 사건은 (경찰이) 일하다가 접시를 깬 게 아니라 집을 홀랑 태워버린 것”이라며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한 ‘엄중 문책’의 뜻을 줄곧 주장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쟁점 법안일수록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국민간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들은 때늦긴 하되, 분명히 긍정적이다. 어쨌든 ‘민심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대명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당 쪽에서 집권 2년차 이명박 정부한테 ‘자기 성찰’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측면도 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쪽엔 변화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일 “잠시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불편이 있을지 몰라도 법질서, 윤리를 지키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에스비에스> 토론에서도, 각종 정책현안에 대한 기조 유지 뜻을 고수한 채 정치에 대한 불신감만 잔뜩 토로했다. 이 대통령의 생각은 여전히 “해머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때리고…”(1월12일 라디오 연설) 상태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9일에는 검찰이 용산 참사 수사결과를 발표한다. 청와대는 이후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그대로 밀고 나가는 방안과, ‘무혐의 처리 뒤 자진사퇴’시키는 방안이 함께 검토된다고 한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정작 중요한 대목은 이 대통령이 여전히 민심에 둔감하다는 점이다. 최근 <한겨레> 여론조사에선 “(용산 참사와) 비슷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앞으로 공권력 행사를 신중히 해야 한다”는 응답이 압도적(79.2%)이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설령 김 내정자가 자진사퇴한다고 해도 때를 놓친 ‘찔끔 처방’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박창식 정치부문 편집장 cspcsp@hani.co.kr
결론이 어떻게 나든, 정작 중요한 대목은 이 대통령이 여전히 민심에 둔감하다는 점이다. 최근 <한겨레> 여론조사에선 “(용산 참사와) 비슷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앞으로 공권력 행사를 신중히 해야 한다”는 응답이 압도적(79.2%)이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설령 김 내정자가 자진사퇴한다고 해도 때를 놓친 ‘찔끔 처방’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박창식 정치부문 편집장 cspcsp@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