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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사회 불의보다는 차라리 무질서를!

등록 2009-02-08 22:01수정 2018-05-11 16:03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칼럼
“우리는 사회 불의보다는 차라리 무질서를 택한다.” 알베르 카뮈는 근대공화국의 요체를 이렇게 갈파했다. 인류 역사상 수천 년 지속된 봉건사회의 지배이념인 신분 ‘질서’를 자유와 평등 이념으로 극복하면서 태어난 게 근대공화국이기 때문이며, 사회정의가 관철되는 곳에서 질서는 당연히 지켜지지만 질서가 강조되는 사회에서는 사회정의의 요구가 압살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이 유별나게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가진 자들에게 법과 질서는 사적 이익의 창과 방패다.

어느 노동자가 공연히 파업을 즐기며, 어느 시민이 이유 없이 무질서를 선택하나? 용산의 철거 세입자들은 무질서를 선호하기 때문에 망루에 올랐던 게 아니다. 사회 불의에 항거하려는 마지막 수단으로 택했을 뿐이다. 건설재벌에는 막대한 개발이익을 약속하고 조합에는 충분한 이익을 보장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인 세입자들에겐 보상금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생존을 위한 벌이의 터전을 빼앗기면서 권리금이나 인테리어 등 설치에 들어간 비용은 가볍게 무시되었다.

이 땅이 민주공화국이라면 나라의 주인이 그런 억울한 상황에 처하기 전에 사회정의가 실현되도록 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존권 요구를 들어주는 데는 없었고 돌아온 것은 떼잡이라는 비난과 용역들의 폭력뿐이었다. 국가의 공권력은 자본의 사적 폭력 도구인 용역들과 한패였다. 집권세력이 앵무새처럼 떠들어대는 법과 질서도 한패냐 아니냐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것이다. 그렇게 철거 세입자들이 억울함과 고통을 당하는 동안 질서 이데올로기에 포획된 사회 구성원들 대부분은 사회 불의가 저질러지는 것에 방관하거나 동조했다. 노동자들의 파업에 ‘왜?’라고 묻기 전에 무조건 반대하듯이.

억울한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었다. 그러나 아무도 사죄는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검찰 조사가 진행되기도 전에, 그래서 참사의 진상이 파악되기도 전에 이미 지침과 방향이 정해졌다. 참사의 모든 책임을 법과 질서를 어긴 농성자들에게 돌려라! 참사 당일 유가족의 동의나 정당한 이유 없이 사망자들을 부검했고, 상주를 포함하여 농성 세입자들을 구속했으며, <칼라 티브이>를 압수수색했다. 수없이 말 바꾸기를 하는 경찰이 용역과 한패이듯이, 참사 책임을 모두 농성자들에게 돌리는 데서 검찰은 경찰과 한패였다.

2월5일로 예정되었다가 하루 미뤄졌던 검찰 조사 발표가 오늘(9일)로 다시 미뤄졌다. <문화방송>(MBC) ‘피디수첩’이 밝힌 용역업체 동원 사실을 차마 없던 일인 양 뭉갤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정의의 실현도 기대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삼성 엑스(X)파일 사건 때도 그 내용을 언론에 밝힌 이상호 기자와 떡값 검사들의 명단을 폭로한 노회찬 전 의원만 재판을 받았다. 삼성의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떡값 검사라고 밝힌 사람들 중에 오늘의 임채진 검찰총장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현 집권세력이 ‘좌파 정권’으로 규정한 노무현 정권에 의해 검찰총장으로 발탁되었는데, 새 정권이 들어서자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것은 물론 “친북 좌파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가 자본의 사익 추구의 도구로 전락하고 사회정의가 질식당하는 곳, 농성 세입자들이 폭력사범이 되어야 하듯이 그들을 지지 연대하는 촛불 시민들은 집시법 위반자가 되어야 한다. 어렵게 쌓아 온 민주주의 역량이 시험당할 때 무질서는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강요받는 것이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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