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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과경제] 고용이 능사가 아니다 / 우종원

등록 2009-01-21 19:09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삶과경제
(장면 1: ㄱ자동차 ㄴ공장) 일본을 대표하는 승용차 조립공장. 작년까지 1500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있었다. 5, 6년씩 근속한 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일체의 계약 갱신이 중단되어 머잖아 비정규직 수는 제로가 된다. 중간관리자 ㅎ씨는 이렇게 말한다. “정규직보다 기능이 뛰어난 이도 많아요. 하지만 정규직을 자를 수는 없잖아요. 경기가 회복될 때를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장면 2: ㅈ인재회사 ㅊ사업소) 전자부품 제조공장에 400명의 근로자를 파견해 왔다. 그렇지만 봄에 계약이 끝난다. 불황기엔 외식이 줄고 도시락 수요가 느는 점을 고려해 현재 이들을 도시락 공장에 전업시키려 노력 중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희망자가 많지 않다며 책임자 ㅅ씨는 한숨짓는다. 지금 시급이 1100엔인데 도시락 공장은 750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장면 3: 수도권에 있는 사이타마시) 기업에서 해고된 시내 거주자를 구제하고자 시의 임시직원으로 100명을 채용할 계획을 세우고 모집을 개시했다. 하지만 지난 일요일까지 응모한 이는 겨우 8명. “고용기간이 짧아(6개월) 구직자의 흥미를 돋우지 못했는지도”라고 아이카와 시장은 반성한다.

지금 일본에는 고용의 미스매치가 심각하다. 한쪽에는 주로 자동차, 전자산업 등에서 잘려 나오는 8만5천명의 실직자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지방자치단체 외에 평소 저임금으로 사람을 구하지 못하다가 불황기에 실업구제를 자처하고 나선 택시·도시락·개호(수발)업계 등의 구인 수요가 있다. 하지만 전자에서 후자로의 이동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고용창출이 탁상 위에서 그리는 만큼 녹록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현실이 시사하는 건 무엇인가. 어떤 이는 이렇게 주장할지 모른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아직 배가 덜 고파서 그래!” 실제로 불황이 장기화되면 정규직보다 뛰어났던 자동차 조립공도 도시락 공장에 취직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아무런 대책이 아니다. 첫째 도시락 공장은 성장산업이 아니고, 둘째 자동차 조립공은 그간 축적한 인적자본(기능)을 덧없이 상실하기 때문이다.

불황이니까 무조건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우리는 이미 후진국이 아니다. 아무 일이나 좋다는 사람이 다수는 아니라는 뜻이다. 일본 사례에서 보듯 실업구제를 바라고 토목공사를 대대적으로 벌인다 해도 그 효과는 정책 입안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설사 고용효과가 있다 해도 저임금에 그것도 성장산업이 아닌 분야에 인적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사회의 중장기적 발전을 저해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고용창출이 아니라 고용유지다. 일자리를 지키면서 지식과 기능을 보존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바탕 위에서만 장기적 전망을 가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일자리 나누기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기업이 고용유지에 책임을 져야 함은 물론, 근로자도 임금을 줄이는 대신 동료 근로자의 고용만은 지킬 수 있게 대승적으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장 일자리 나누기에 합의하기 어렵다면 실직자가 정처 없이 헤매지 않고 해당 산업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최소한의 조처라도 해야 한다. 성장산업을 중심으로 노사가 공동으로 취업센터를 설립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취업센터는 산업에 필요한 훈련과 재취업 지원을 실시하고 정부가 기본 생활비를 부담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사회적 대타협을 말한다. 하지만 어려울 때 친구의 진가가 확인되듯 사회적 연대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약자의 리스크를 함께 나눌 때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다.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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