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논설위원
아침햇발
여야 3당 원내대표가 박중훈쇼에 나와 팔씨름을 했다. 국민 앞에 “죄송하다”며 함께 머리를 조아렸다. ‘쇼하는 거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들이 싸움을 멈추지 않으리란 걸 알기 때문이다. 2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격돌은 더 살벌해질 게 분명하다. 한나라당은 지난주말, ‘국회 폭력행위 방지를 위한 특별법’을 마련했다. 폭력을 휘두른 의원의 의원직을 박탈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폭력방지법이 폭력을 막을 수 없으리란 걸 국민은 안다. 오히려 이 법이 또다른 충돌과 폭력을 가져오게 생겼으니, 참 대책 없는 게 정치다.
국회에서 폭력이 폭력 자체만으로 문제된 적은 별로 없다. 법안 강행처리와 폭력·농성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이었다. 해머만 등장하지 않았을 뿐, 똑같은 풍경은 지난 정권에서도 되풀이됐다. 이번엔 여야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이다. 폭력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폭력방지법 제정에도 여론이 시큰둥한 이유가 여기 있다. 국민들 눈엔 다 ‘똑같은 놈들’로 보인다.
국회가 시급히 해야 할 건 폭력방지법 제정이 아니다. 민심에서 너무 멀어진 국회를 다시 국민 곁으로 되돌리는 게 먼저다. 얼마 전 보수단체에서 폭력 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꼭 폭력만일까. 여기자를 성추행한 의원은 버젓이 의사당을 활보하는데, ‘다수의 횡포’에 항의한다며 폭력을 휘두른 의원의 자격을 박탈하는 건 공평한가. 다수 국민의 이익을 현저히 침해하는 법안을 주도한 의원과, 동료 의원의 팔을 비튼 의원 중 어느 쪽의 책임이 더 무거운가. 이 판단을 유권자에게 맡기자. ‘국회의원 소환제’를 도입하자. 국민에게 심각한 배신감을 안겨준 의원이라면, 그를 뽑아준 국민이 자격을 박탈할 수 있어야 한다.
2006년 5월 국회는 주민소환제법을 제정했다. 당시 이 법의 통과를 막기 위해 의장석 점거를 시도하면서 본회의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건 한나라당 의원들이었다. 그런데 이 법의 적용대상은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일 뿐, 국회의원은 빠져 있다. 국회의원들의 투철한 직업 이기주의 탓이란 걸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국회 불신이 극에 이른 지금도, 주민소환제 도입을 주장하는 이는 원희룡 의원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나라당이 국회 폭력을 원천적으로 막고 싶다면, 굳이 여야 충돌을 부를 게 뻔한 폭력방지법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국회의원 주민소환제를 도입하자고 해 보라. 민주당도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주민소환제는 정략적 동기에서 악용될 수 있고, 대의 민주주의 체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걱정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 국민과 국회의 괴리가 너무 커서 대의 민주주의 자체가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국회를 믿지 못하니, 시민들은 직접 거리로 뛰쳐나온다. 지난해 벌어진 초유의 촛불 사태는 그런 상징적 표현이다. 현정권이 진정 제2의 촛불을 막고 싶다면, 방송법안 통과를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독려할 게 아니라 국회의원 주민소환제를 촉구하는 게 명분도 있고 실익도 있다.
민주주의가 살려면 유권자와 제도정치의 틈을 좁히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의원들이 임기 내내 유권자를 두려워하게 되면, 청와대나 당 지도부 지침에 모르모트처럼 움직이는 일은 많이 사라질 것이다. 고양이는 자신의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한다. 끊임없는 날치기 시도에 분노한다면, 의사당 폭력에 진저리가 쳐진다면, 진보·보수를 가리지 말고 시민들이 국회의원 소환제 도입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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