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칼럼
울산 현대중공업 소각장 굴뚝 꼭대기. 한국 노동자의 연대 행동이 오늘 이 땅에서 어떤 처지를 감수해야 하는지를 알려면, 그리고 버스 요금을 70원으로 알면서 대권을 꿈꾼다는 정몽준씨나 그가 몸담은 한나라당이 말하는 ‘민생’이 무엇인지 알려면 바라봐야 할 곳 중의 하나다. 벌써 26일째다. 현대미포조선의 정규직 노동자 김순진씨와 민주노총 울산본부 이영도 수석부본부장이 소각장 100미터 꼭대기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현대미포조선의 사내하청 용인기업 노동자들은 6년 전 일방적으로 해고되었다. 오랜 소송 끝에 지난해 7월 대법원은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어 고법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그러나 회사 쪽은 고등법원에서 최종판결이 날 때까지 복직을 허용하지 않겠다며 막무가내다. 굴뚝 꼭대기에 오른 두 노동자의 요구사항은 이들의 복직과 현장 노동탄압 중단이다. 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 현장의 노동탄압 중단 요구처럼 상식의 요구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가 회사 쪽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노동조합이 어용으로 전락한 곳에서 이 당연한 상식의 요구조차 목숨을 걸어야 한다. 지난해 11월 현대미포조선의 정규직 노동자 이홍우씨는 현장의 노동탄압에 항의하여 4층 현장사무실에서 목에 줄을 걸고 뛰어내렸고 중상을 입었다.
고공에서 추위와 바람에 맞선 두 노동자는 그동안 초콜릿과 물만으로 버텨야 했다. 현대중공업이 그것만 올려 보낼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1월17일 굴뚝 꼭대기와 밑의 노동자들 사이에 밧줄이 연결되었고 식량을 보급할 수 있었다. 이를 방해하려다 실패한 현대중공업의 보복 행위가 이날 밤 벌어졌다. 소화기와 헬멧으로 무장한 경비 50~60명이 굴뚝 밑 도로에서 연대 단식농성을 벌이던 노동자 등 10여명을 마구잡이로 구타하고 농성 물품을 불태웠다. 현장에 있던 경찰은 속수무책으로 방관했다. 걸핏하면 부르대는 ‘법과 질서’는 애당초 일방적이었다. 5공으로 회귀하는 땅, 굴종을 거부하는 노동자는 그때처럼 정권의 탄압뿐만 아니라 자본의 사적 폭력까지 당해야 한다.
<와이티엔>이 노조 활동가를 추방하고, 서울시 교육감이 전교조 교사를 파면·해임한 데 이어, <한국방송> 이병순 사장이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의 양승동 공동대표 등 세 명을 파면하고 다수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일련의 사태 진전과 미네르바 구속이 상징하듯, 정권이 국민을 두려워하는 대신 국민이 정권을 두려워할 때 민주주의는 조종을 울린다. 누구 말처럼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그 민주주의가 누구들의 손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촛불이 타올랐을 때 두 차례 고개 숙였던 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촛불의 힘에 머리 숙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힘의 논리가 관철될 때 그 자체로 힘을 가진 권력과 금력에 맞서 그것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인 노동자가 노사 균형을 이루고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힘은 노동자 의식과 거기서 나온 연대 행동에 있다. 무노조 원칙을 고수하는 삼성의 제품을 민주노총의 조합원들까지 무심코 사들이듯이, <한겨레>와 <경향>의 논조를 문제 삼아 광고를 중단한 삼성 제품을 한겨레와 경향의 독자들조차 무심히 사들일 때 노사균형을 이룰 수 없듯이 민주주의의 성숙도 기대할 수 없다.
현대중공업 소각장 굴뚝 위 두 노동자가 이 땅의 노동자와 연대를 상징하며 찬 바람을 맞고 있다. 현대 중공업 쪽이 “그 위에서 얼어 죽을래, 순순히 내려올래”라고 묻는 상황에서 그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우리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홍세화 기획위원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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