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칼럼
지난 17일 이스라엘이 일방적 휴전을 선언하면서 가자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의 공세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1월15일 현재 1105명의 사망자와 5100명의 부상자가 나왔고, 이 중 민간인 사망자는 670명, 어린이 사망자만 330명에 이른다. 여기에 가자지구 유엔 시설에 대한 무차별 포격과 백린탄 사용 등은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유엔 안보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즉각적 휴전을 요청해 왔고, 일부 남미 국가들은 항의의 표시로 아예 이스라엘과 단교까지 했다. 또한 대규모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스라엘을 전범재판에 회부해야 한다는 국제여론까지 대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만은 예외적이다. 개전 초 부시행정부는 이번 사태를 하마스의 로켓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자위권 행사로 규정해 이스라엘을 두둔하고 나섰다. 1월8일과 9일에는 미 상원과 하원이 하마스를 비판하고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즉각적 휴전을 촉구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1860 채택에 15개 이사국 중 미국만이 유일하게 기권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특수관계를 고려할 때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 미국의 보수 논객 월터 미드는 대다수 미국민이 친이스라엘 성향을 갖는 것은 ‘유대 로비’의 결과가 아니라 뿌리 깊은 역사, ‘문화적 유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유대-기독교의 성서적 연대, 선민의식의 공유, 종교적 박해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착지에 민주주의와 평등세계의 건설, 그리고 나치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의 정 등이 이 두 국가를 끈끈히 엮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민이 이스라엘의 안보를 미국의 안보와 동일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자 사태에 대한 편파적 태도는 미국 안보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알 자지라> 방송은 가자의 무고한 시민과 어린이, 그리고 이슬람 사원과 이슬람 대학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을 13억 무슬림들에게 24시간 쉬지 않고 아랍어와 영어로 방영하고 있다. 하마스와 가자에 대한 공격은 이슬람에 대한 공격으로, 그리고 그 배후에 미국이 있는 것처럼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슬람 세계를 단결시키고,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자들에게 지하드(성전)의 새로운 명분을 주면서 미국이 전개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대량살상무기 확산 문제도 알고 보면 이스라엘과 무관치 않다. 왜 과거에 이라크와 리비아가, 그리고 현재 이란과 시리아가 핵무기 보유에 열을 올리는 걸까? 이스라엘에 대한 핵 억지력 확보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공세적 행보를 취할수록 이들 인근 중동국가들의 핵무기 보유 의지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국가안보의 주요 목표로 삼고 있는 미국으로서 이는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또한 가자 사태로 중동에서 미국의 입지가 크게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친미 온건노선의 이집트, 요르단,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연합하여 이란과 시리아에 견제를 가해 왔다. 그러나 가자 사태 이후 이들 국가에서 반이스라엘, 반미 정서가 크게 고조되고 있고, 이는 미국의 역내 영향력 행사에 치명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렇듯 ‘절제되지 않은 골리앗’의 모습을 한 이스라엘은 미국의 안보에 부메랑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 점 유념하여 미국은 이스라엘에 좀더 신중하고 절제된 정책행보를 촉구해야 할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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