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주 학고재 주간
삶의창
아는 스님이 토굴에 들어가기로 작정하셨다. 돌아올 날은 기약하지 않았다. 긴 고행이 될 참이다. 해 바뀌기 전에 떠난다기에 찾아뵙고 차를 나눴다. 스님은 시를 짓고 그림을 아끼는 분이다. 내 하찮은 풍류에도 대거리를 잘 해준다. 푸얼차 몇 잔에 취한 척하며 성급히 석별의 정을 드러냈다. 스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작품 몇 점을 내보인다. 얼마 전 전시를 끝낸 서예가의 붓글씨인데, 맘에 들면 가져가란다. 망설이는 눈치를 보이자 스님이 하나를 권한다. 명 말의 문인 진계유가 쓴 글을 옮겨놓은 것이다. 물론 한문이다. 풀이하면 ‘문 닫으니 여기가 깊은 산이요/ 책을 읽으니 곳곳이 정토로구나’가 된다. 예서체가 예스럽게 투박해서 괜찮았다. 하여도 번잡한 속인에게 갑갑한 글귀다. 용맹정진하는 스님에게 어울릴 터다. 내키지 않았지만 그냥 받아왔다.
정작 돌아와서도 마음에 남은 붓글씨는 따로 있었다. 선조대의 문장가 송한필의 오언시를 쓴 글인데, 초서의 민활한 흥취가 단박에 느껴진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시의 맛이 곱씹힌다. 한문 원시의 뜻을 새기면 이렇다.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네/ 가련하다, 한해의 봄날이여/ 오고감이 비바람에 달렸구나’ 쉬운 언어에 담긴 통속성이 오히려 삽상한 미감을 풍긴다. 꽃은 봄의 열락이다. 그러한들 피고 지는 꽃이 비바람에 오가면 봄날이 무슨 수로 열락을 붙잡아둘까. 무력하고 덧없는 봄날이 실연한 여인의 뒷모습처럼 서럽다. 원시는 외기 쉬웠다. 스님 앞에서 나는 일부러 들으란 듯 음송했다. 대놓고 ‘이거 주시오’ 할 수가 없었지 딴에는 생심을 보인 셈이다. 스님은 딴청을 피우듯 진계유의 글을 포장하신다. 그리곤 “문 닫아걸면 어디든 깊은 산이라 …” 연신 되뇌었다.
오는 해를 맞이하기보다 가는 해를 달래는 마음이 나는 앞선다. 새날은 끝내 낯설다. 묵은 날들의 저 깊고 오랜 정을 되살리는 데 황량한 옛터만큼 좋은 곳이 없다. 새날의 해가 돋아나기 며칠 전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남한산성을 찾았다. 북문에서 동문 가는 길에 자리한 동장대 옛터에서 발을 멈춘다. 여기는 새것과 헌것이 겨루는 곳이다. 그것이 기이한 풍경을 자아낸다. 복원이 마무리된 성곽은 늠름하다. 그러나 회춘한 역사라서 생경하다. 그 곁에 허물어진 성가퀴가 있다. 순명(順命)하는 노인의 자태다. 중국의 문필가 위치우이가 그랬던가, ‘폐허는 건축의 낙엽’이라고. 하지만 떨어진 잎사귀가 나무를 추억하랴. 성가퀴는 무너져가는 힘으로 자신을 지탱한다. 폐허와 잔재의 어름에서 성가퀴는 망각에 빠지기 전 한 톨의 기억을 붙잡으려 한다. 그 안간힘을 보면 사라질 것들의 운명이 떠오른다. 새삼 발밑을 살피니 꽃들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다. 여름날의 패랭이꽃과 가을날의 구절초와 자주쓴풀들이 말라비틀어진 채 뿌리를 드러냈다. 앙상한 억새는 바람에 허리가 꺾였다. 기쁜 지난날들을 보여준 꽃이 바뀌는 날 앞에서 이처럼 가뭇없다.
스님이 토굴로 출발하면서 나에게 전화했다. 잘 가시라 잘 있어라 인사 끝에, 송한필의 시가 탐났다고 이실직고했다. 스님이 알은척을 하며 한마디 던지신다. “피고 지는 꽃 연연하지 말고 비바람 탓하지 마소.” 그게 안 주신 이유냐고 투덜댔더니, 스님은 내가 잊었던 시 하나를 기어기 상기시켰다. 고려 문인 이규보의 시다. ‘꽃 심으면 안 필까 걱정하고/ 꽃 피면 또 질까 걱정하네/ 피고 짐이 모두 시름겨우니/ 꽃 심는 즐거움 알지 못해라’ 스님이 떠나도 새날이 오니 알겠다. 갈 것이 가고 올 것이 온다.
손철주 학고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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