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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성탄 등을 달면서 / 박기호

등록 2008-12-19 19:42

박기호  신부
박기호 신부
삶의창
스물두어 명 살고 있는 마을이지만 성탄절을 준비한다. 아이들과 함께 구유 장식을 하였는데, 구유에 이르는 길가 나무에 등을 걸기로 했다. 우리 마을과 가족들의 소망을 성서 말씀으로 적어 청사초롱 같은 등불을 만들어 달았다. 꼬마전구를 켜놓았더니 칠흑 같은 산촌의 밤을 수놓은 울긋불긋한 색감이 아주 예쁘다. 부처님 오신 날의 어느 작은 암자 같은 기분이다. 그렇지, 예수님께서 재림하여 오실 때 교회 사찰 구분이 따로 있겠는가. 어쨌건 올해 성탄을 좀더 의미 있게 맞이하고 싶다.

최근 세간에 ‘시대정신’(Zeitgeist)이라는 수 편의 동영상이 유포되고 있다. 인류 역사에 진리처럼 의심받지 않는 믿음의 현상이 있는데, 가령 종교와 화폐, 권력 같은 것들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적 권력을 조종하는 황제가 바로 금융 자본가들이라 규정한다. 세계 정치 경제 무대의 커튼 뒤에 숨어 9·11같이 경악할 테러와 암살, 전쟁을 조작하는 그들의 실체와 폭력적 음모를 고발하는 내용으로 ‘2007년 할리우드 활동가 영화 페스티벌 특집다큐 수상작’이라 한다. 세계 금융위기와 맞물려 선풍적인 접속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첫번째가 ‘그리스도교에 대한 편견’을 다룬다. 동정녀 잉태의 예수 탄생과 12제자, 기적, 죽음, 부활 이야기들은 이집트 신화의 편집일 뿐 허구이며 12월25일은 성탄절이 아니라 태양신 기념일이라는 것 등이다. 새로운 학설은 아니다. 신학생 수준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흔한 자료인 것이다. 아니? 그럼 알면서도 신자들에게 거짓 설교를 해왔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종교란 사실이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신념이고 신앙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각기 말하고 싶은 것이 다르듯이 신화와 경전 또한 그러하다.

예수님은 다른 성현들처럼 역사적인 실존 인물이다. 신화가 있어서 예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있어서 성탄절이 있는 것이다. 예수는 하늘이 낸 모든 인간의 완전한 원본으로 계시된 분이다. 사람들은 모든 존재를 하늘이 점지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자기 존재의 출신성이 절대존재로부터 왔다는 거룩하고 위대한 사실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을 가볍게 여겨 대상화하고 서로의 인격과 인권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학살한다.

인간의 원형이란 비록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할지라도 천상의 영과 결합되어 있음을 성탄으로 보여준다. 삶의 정화는 영혼과 결합하여 완성을 향하게 한다. 물질을 숭상하는 탐욕은 그 결합을 분열시킨다. 이상과 정신세계가 무시된 발전과 문화, 영성 없는 과학과 교육, 철학 없는 정치와 경제, 생명 없는 자본, 상품주의 가치관들은 죽음을 부르는 춤이다. 교육과 종교가 할 일은 그 가치를 보게 하는 것이요 국가 정부가 할 일은 그것을 시스템으로 돌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너무나 거꾸로 간다. 종교는 상업주의 선교로 영성을 왜곡하고 교육은 경쟁과 능률만 강조한다. 정부의 정책들에는 영성도 철학도 미래의 비전도 느껴지지 않는다. 영성 없는 발전은 흉측한 괴물이 되어 주인에게 달려든다. 그것이 기후 이변과 세계 금융위기의 본질이다. 성탄이 필요하다. 그 울음소리로 대각하여 영적 결합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등을 달면서 기도한다. “금년 성탄에는 특별히 장로님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인사들에게 아기 예수의 울음이 들리게 해주십시오.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어 작은 소망의 등불을 가로수에 매달면서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주권자들의 마음이 보이게 해주십시오.”

독자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박기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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