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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권력과 교육 / 김종철

등록 2008-12-12 19:39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삶의창
하니 고로는 파시즘 체제와 맞서 싸우는 데 평생을 바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역사가이자 교육자였지만, 전쟁 후에는 국회의원이 되어 국립 국회도서관을 창설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국립국회도서관의 창설 목적은 무엇보다 정부와 관료들에 의한 정보 독점을 막고, 국회의원과 시민들이 풍부한 정보와 지식에 자유롭게 접근함으로써 올바른 입법과 정부 감시 활동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철저한 민주주의자로서, 민주주의가 되려면 “정치가 진리에 입각해 있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1948년에 성립된 국회도서관법의 전문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성서의 구절을 인용·삽입했고, 이 구절은 지금도 일본 국회도서관 복도 벽면에 새겨져 있다.

그러나 자신의 염원과는 달리, 전후 일본 정치는 자민당 장기집권과 독점재벌의 부활에 의해 사실상 파시즘 체제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이 이미 1960년대부터 그가 내린 판단이었다. 그가 보기에 전쟁 전후를 막론하고 일본 파시즘을 뒷받침해 온 핵심 세력이 교육 관료 체제였다. 그는 전후에 정부 조직이 개편될 때 육군 및 해군성, 그리고 내무성과 사법성이 해체된 것처럼 문부성도 폐지됐어야 했고, 지금이라도 마땅히 폐지돼야 한다는 논리를 생애 마지막까지 폈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문부성 폐지론을 편 것은 교육 관료들이야말로 거짓논리에 입각하여 전쟁과 침략을 미화하고 민중에 대한 사상적 통제와 세뇌 작업을 자행해 온 파시즘 체제의 첨병이었기 때문이며, 나아가서 그들이 전후에도 반성은커녕 국민을 단순히 조작과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전체주의적 교육관을 그대로 고집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본이나 한국에서 학생과 교사의 인간적인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을 단순한 객체로, 관리대상으로 보는 교육관이 청산되지 않고 있는 것은 교육 관료들이 일찍이 ‘교육의 자유’를 향유해 본 체험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니 고로는 이 세상에 교육의 자유처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이 없다고 평생 생각했고, 그런 만큼 학생과 교사의 자유를 억압하고, 교육 내용을 끊임없이 간섭하는 관료통제 시스템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교육의 생명이 자유에 있고, 진정한 학습이란 자유인의 한가로움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강제적인 학습은 인권유린이라는 측면에서도 문제지만, 실제로 아무런 실효도 없음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교육 관료들은 끝없이 교사와 학생들을 불신하고, 교육현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고 부심한다. 이처럼 교육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교육현장의 신뢰관계를 무너뜨리고서는 이른바 국가 경쟁력이라는 것도 공염불로 끝날 공산이 크다.

한국의 아이들은 오늘날 교육지옥 속에 살고 있다. 이 상황은 수십년 넘게 방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자행되고 있는 만행은 자라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여기에는 물론 제 자식만 생각하는 학부모의 ‘숙명적인’ 이기심이 큰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근원적인 책임은 국민 개개인을 존엄한 인격을 가진 자유인으로 보지 않고, 기껏 노동자, 소비자, 납세자, 병역의무자로만 간주하는 지배권력의 시선에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관의 방침에 고분고분 순종하지 않는다고 교사들의 목을 아무렇지 않게 자르는 교육 관료들의 행태를 보면, 결국 오늘날 권력이 원하는 국민은 노예나 가축이지 자주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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