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논설위원
아침햇발
이명박 대통령은 점점 더 조지 부시 대통령을 닮아가는 듯하다. 이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 잘 통하고,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하지만 요즘 보면 대통령의 행동뿐 아니라,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에서도 두 사람은 닮아가고 있다. 2003년 12월 주간지 <타임>의 커버스토리 제목은 ‘부시를 좋아하거나 또는 미워하거나’였다. “사람들은 부시에 대해 중간의 복잡한 감정 없이, 그냥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극장 안에서 ‘조지 부시’를 외치는 순간, 사람들의 반응은 양쪽으로 쫙 갈릴 것이다.”
지난주 모든 신문엔 이 대통령이 농수산물시장에서 노점을 하는 할머니를 껴안는 사진이 실렸다. 이 힘든 시기에 울먹이는 할머니를 품에 안은 대통령의 모습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그러나 할머니의 눈물이 대통령 가슴을 적셨을진 모르지만, 대통령의 눈물은 많은 국민들의 가슴엔 와닿지 않았다. 대통령이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할머니에게 건네는 모습에 감동하기엔, 그가 파 놓은 분열과 갈등의 골이 너무 큰 탓이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행동을 하든 국민 다수의 박수를 받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기사에 달린 수많은 인터넷 댓글을 보면, 그의 쇼맨십을 비웃는 댓글뿐 아니라 ‘좌빨’(좌익 빨갱이)의 잘못으로 경제가 이렇게 됐다는 식의 댓글도 많다. 대통령의 모든 행동은 좌우의 잣대를 벗어나선 해석할 수가 없다.
이 대통령과 부시의 공통점 중 하나는, 둘 다 자신은 오류가 없고 누가 뭐래도 내가 옳다는 확신에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항상 잘못은 남의 탓이라고만 생각하니, 다른 사람과 타협할 이유가 없다. 부시가 가장 많이 쓴 표현 중 하나는 ‘나는 기대한다’(I expect)였다. 부시는 의회가 법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유엔은 미국의 행동을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아랍국들은 그의 중동정책을 따라줄 것으로 ‘기대했다’. 지지자들에겐 자신감의 표현으로 비치지만, 반대자들에겐 독선적이고 모욕적이란 느낌을 줬다고 <타임>은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지난 10년간’이다. ‘지난 10년간’ 정책 잘못으로 경제가 이 지경이 됐고, ‘지난 10년간’ 평등주의 폐해로 교육이 엉망이 됐고, ‘지난 10년간’ 북한에 끌려다니다 남북관계가 뒤틀리고 한-미 관계가 불편해졌다고 말한다. 심지어 얼마 전 발생한 군 내무반 수류탄 투척사건에 대해서도, ‘지난 10년간’ 군의 기강이 해이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정치적 언사라기보다는, 이 대통령 스스로 모든 잘못된 현상은 진보 정권의 탓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는 듯하다. 군 총기사고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더 많았지만 대부분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대통령의 논리구조에선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런 대통령들의 특징은 ‘여론이나 지지율엔 신경 쓰지 않겠다. 오직 내 할 일만 한다’는 것이다. 부시는 아예 신문을 읽지 않았고, 자신에게 불리한 통계 수치는 외면했다. 이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했다는 “이젠 오로지 일로 승부하겠다”는 말에서, 믿음보다는 ‘앞으로 얼마나 더 귀를 닫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기우일까. 다만, 두 사람 사이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부시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적어도 집권 중반기까지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 그게 부시의 2004년 재선을 가능하게 했다. 이 대통령도 그럴까? 아직 집권 초기인데도, 보수 진영에서조차 그에 대한 열광적 지지를 느끼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박찬수 논설위원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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