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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증오로 애국하는 사람들

등록 2008-12-07 19:36수정 2018-05-11 16:03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칼럼
‘반국가교육 척결 국민연합’이라는 단체가 서울 전교조 교사들의 명단을 공개했다. 김진홍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의장, 김홍도 금란교회 목사, 박세직 재향군인회장, 서경석 선진화 시민행동 상임대표,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최광 한국외대 교수 등이 상임지도위원으로 있는 이 단체는 “전교조를 반국가 이적 단체로 검찰에 고발한다”, “전교조 교사 개개인이 저지른 각종 위법행위를 고소, 고발한다”, “지역별로 전교조 만행에 대한 학부모 규탄대회를 개최한다” 등을 운동 방향으로 밝히고 있다. ‘반국가교육 척결’이란 이름 대신 “전교조 척결”이라고 붙였다면 더 솔직하고 정확했을 것이다.

그들은 전가의 보도인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지난 10월 전교조를 이적단체 구성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이번 명단 발표는 앞으로 계속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창립선언문에 따르면 전교조는 학생들에 대한 좌경 의식화뿐만 아니라 더욱 치솟는 사교육의 원흉이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교육 파행을 낳은 모든 악이 오로지 전교조에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전교조에 대한 ‘증오로 애국하는’ 용사들이 결집한 것이다. 그 증오는 영화배우 문근영씨의 소리없는 선행까지도 외조부의 전력과 연결시켜 시비를 건 사람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른바 뉴라이트 세력은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고 보는 극우라는 점에서 올드라이트와 차이가 없다. 나와 다른 남의 사상과 의견을 용인하지 않고 억압하거나 배제할 것을 요구하는 ‘불관용의 기수’라는 점에서 똑같은데, 다른 점이 딱 하나 있다. 뉴라이트는 올드라이트와 달리 스스로 ‘우익(라이트)’임을 밝혔다는 점이 그것이다.(물론 스스로 극우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는 “너, 빨갱이지?”, “너, 반미, 용공이지?”라고 남을 규정했을 뿐 자신을 분명히 규정하지 않던 올드라이트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이 있는데 이렇게 바뀐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물론 민주/반민주의 구도와 관련이 있다. 민주/반민주의 구도가 분명했던 예전에는 스스로 ‘라이트’를 표방하지 않고 대신 ‘보수’를 참칭했는데 민주/반민주 구도가 흐려진 오늘날엔 드러내놓고 ‘라이트’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반민주’가 아니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그것은 민주/반민주의 구도가 분명했던 과거에 공권력의 탄압을 받았지만 시민사회나 학부모로부터 민주세력으로 인정받았던 전교조가 오늘 사면초가에 빠지게 된 배경과 만난다. 내용 없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민주세력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예인데, 민주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연대가 요구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지만 더 무서운 것은 그 무식이 광신, 증오, 사익 추구와 결합할 때다. 볼테르가 일찍이 시사했듯이, 광신은 그 자체에 열성을 내장하고 있다. 증오도 마찬가지이며 사익 추구가 그 뒤를 따른다. 다시 말해, 광신, 증오, 사익 추구는 그 자체로 열성을 내장하고 있지만, 공익, 사회정의, 연대, 평등에는 열성이 내장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공익, 사회정의, 평등과 연대를 지향하는 민주시민들이 적극적이지 않으면, 사익 추구, 광신, 증오의 세력에게 이길 수 없다. 오늘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이명박 ‘경제 대통령’ 아래 경제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희생양을 찾아 극우세력이 더욱 준동할 것이다. 이에 침묵하고 방관하는 것은 비겁에 머물지 않고 자칫 파시즘을 불러올 수 있다.

홍세화 기획위원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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