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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한국의 오바마, 한국의 하인스 워드… / 백기철

등록 2008-11-23 19:38수정 2008-11-24 09:58

백기철 스포츠부문 편집장
백기철 스포츠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이성남, 이싸빅, 신의손, 그리고 김모따(?)

한국에서 제2의 축구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름이다. 앞의 세 사람은 귀화해서 이미 한국인이 됐다. 마지막의 모따(성남 일화)는 얼마 전 귀화 의사를 밝혔다. 브라질 출신인 모따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뛰고 싶어한다. 케이(K) 리그 최고의 재주꾼으로 꼽히는 그가 ‘붉은악마’의 응원을 받으며 그라운드를 누빌 날이 올까?

답은 희망적이다. 한국 스포츠계에서도 ‘순혈주의’의 벽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이달 초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은 이른바 ‘하프 코리안’(혼혈인)의 프로리그 참가를 허용하기로 했다. ‘하프 코리안’이란 말이 등장한 것은, 부모 중 한 사람이라도 한국인이면 외국인 용병과 달리 내국인 대우를 해 주기로 한 때문이다. 케이비엘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대표적인 선수는 토니 애킨스. 한국인 어머니와 농구선수 출신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언뜻 차기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를 떠올리게 하는 이국적 마스크가 인상적이다. 그도 오바마처럼 미국의 어느 농구코트에서 숱한 땀을 흘렸으리라. 여자 프로농구는 이미 ‘핏줄 벽’을 허물었다. 지난 시즌부터 국내 무대에서 뛰고 있는 마리아 브라운(금호생명)이 그 첫 선수다. 한국인 어머니를 쏙 빼닮은 건강미 넘치는 외모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흐름이라면 다인종, 다민족 선수들이 우리 스포츠의 주역으로 등장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지난 여름 베이징 올림픽 여자탁구 단체전 동메달을 일궈낸 당예서(대한항공)는 순수 외국인(중국) 출신으로, 드물게 태극마크를 달았다. 당예서는 최근 한국페어플레이위원회(KFPC)가 주는 올해의 페어플레이상을 받았다. 이 상은, 지난여름 짧은 단발머리의 그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침착하게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본 이들이 그에게 보낸 작은 답례일 것이다. 또 이 상은 1999년 어렵사리 한국에 건너와 8년 동안 연습선수로 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까지 겪었을 고난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허정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최근 “일본에서는 귀화한 선수를 대표팀에 자주 발탁하는데 한국도 이를 검토해볼 때”라고 말했다. 일본은 여지껏 세 차례 정도 귀화 선수를 대표팀에 발탁해 월드컵 무대에 세운 적이 있다. 프랑스 같은 나라는 아예 ‘혼혈 군단’이라고 할 정도다. 98년 월드컵 우승 주역 지네딘 지단은 알제리계 2세이고, 트레제게는 아르헨티나인의 피를 이어받고 있다.

스포츠는 꿈을 먹고 자란다고 하지만, 거꾸로 대중에게 헛된 ‘환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90년대 중반 제작된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농구의 꿈>(Hoop Dreams)의 한 장면. 시카고의 한 고교 농구선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농구는 게토(빈민가)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표다.” 하지만, 영화는 대부분의 흑인 청소년 선수들이 학업이나 직업교육을 등한시한 채 농구에만 매달리다 결국 아무런 직업도 가질 수 없게 되는 현실을 고발한다.

스포츠가 설사 어두운 현실에 대한 ‘눈가림’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엄마 손을 잡고 동네 놀이터에 나온 ‘코시안’ 아이의 해맑은 얼굴이 바로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야 할 ‘미래’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국의 오바마, 한국의 하인스 워드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는 일 아닌가. 다인종, 다민족 사회로 가는 국제화 흐름 속에서 한국 스포츠가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백기철 스포츠부문 편집장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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