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호 신부
삶의창
소백산 골짜기에 아기 울음소리가 울렸다. 마을 반장님에게 딸이 태어난 것이다. 반장 김씨는 이곳에서 태어난 본토박이다. 아흔 가까우신 노모를 모시고 약초재배, 고추농사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마을 농사꾼이다. 일찍이 선친이 일군 화전을 물려받아 농사도 짓고 탄광일도 했다. 도시에 나가 잡부도 했고 그때 결혼을 하여 딸도 하나 두었다. 도시 생활이 적응되지 않아 돌아왔는데 그 무렵 아내가 떠나버렸다.
그는 우리 공동체가 자리 잡아 왔을 때 처음 만난 주민이다. 거짓이나 텃세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너무나 순수하고 겸손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를 농사 고문으로 삼고 의지하며, 파종에서 가을까지 매번 물어가며 농사를 짓는다. 그는 우리가 못 하는 쟁기질을 해주고 우리는 그의 밭일을 도와 품앗이를 한다.
노모를 모시고 어렵게 살아가던 그가 2년 전 중국 연변에서 온 아내를 맞았다. 우리한테는 연변댁으로 통하는데 그도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농사일을 잘한다. 우리가 품앗이를 하거나 집에 찾아가면 늘 밝은 얼굴로 커피를 내오고 활달하여 참 좋다. 낯선 땅에 그것도 깊은 골짜기에 살게 되어 적적함도 있을 터인데 성품이 온순하고 낙천적이라 참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부부의 궁합이 틀니처럼 잘 맞으니 하늘이 착한 이에게 내리신 축복이리라.
출산이 다가와 병원에 간다더니, 다음날 전화가 왔다. 딸을 낳았다며 이름을 지어 달라는 것이다. ‘소백산에 핀 꽃’이란 의미로 ‘소화’(小花)라 했다. 부모들도 좋아했다. 아기가 세례를 받게 된다면 ‘데레사’로 지어줄 생각이다. 출생이란 선택이 불가하거니와 이름도 조국도 가문도 부모도 결정지어진 환경에 던져질 따름이다. 그러나 예수님도 공자님도 빈자의 텃밭에 태어나신 것을 보면 하느님의 축복이란 모두에게 공평함이 분명하다.
착하게 살았으되 가진 것이라곤 없는 농부와 좀더 풍요로운 꿈을 안고 국경을 넘어 시집온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기, 평화롭게 잠든 소화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듣는다. “나를 보아요. 세상이 험하다고 하지만, 우리 부모님처럼 아직도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걸요. 가난 속에서 희망을 피워내잖아요.”
생명의 탄생이란 예삿일이 아닌 경이로운 신비다. 하늘은 모든 생명을 숨결로 낸다. 예수의 베들레헴 마구간 숨결의 속삭임은 벌판의 목동들에게까지 들렸다.
‘시대는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시대를 만든다.’ 우리 시대는 이렇게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기록해 가고 있다. 서로가 필요했기에 외국인 이주자들이 왔다. ‘사람은 함께 사는 데 의미가 있다.’ 이 땅에 사는 귀화 결혼자들은 모두 ‘소화’의 부모처럼 힘없는 빈자들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하지 않았던가. 착한 마음으로 맞이하여 서로 의지하면서 작은 행복을 만들어 가는 삶이 소중하고 빛나는 이유는 그것이 신의 축복이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온 소화를 찾아보려고 읍내 마트에 들렀다. 화장지와 분유를 집었는데 분유 값이 꽤 비쌌다. 못된 첨가물이 섞이진 않았을까 방정맞은 생각도 들었다. 마음 놓고 먹일 것도 없는 세상에 태어난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소화에게 파란 하늘과 숲의 공기, 청정한 물을 선물하고 싶다. 깨끗한 먹을거리로 자라게 하고 싶다. 무엇보다 몇 년 후 소화가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갈 무렵 그 아버지가 졸업했던 마을의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보발분교가 폐교되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 소화를 위하여 …!
박기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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