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칼럼
언제부턴가 내 주변에서 이상한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전주문화방송>에 이상한 사람이 왔다는 것이다. 누구? 사장이다. 이름은 장태연. 전주문화방송 사장이면 지역에서 통용되는 명칭으론 이른바 ‘기관장’이다. 다른 기관장들, 지역 유지들과 어울리면서 ‘에헴’ 하고 지내기에 썩 좋은 자리다. 그렇게 지내는 게 지역방송사의 위상을 높여주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장태연은 영 딴판이다. 자꾸 낮은 곳으로만 임하려고 든다. 물론 그 전에 있던 전주문화방송 사장들 중에도 그런 훌륭한 분들이 있기는 했지만, 장태연의 경우엔 더욱 유별나다. 아차, 벌써 나의 ‘편견’을 노출하고 말았다. 낮은 곳에 임해야만 훌륭하다고 보는 나의 편견 말이다. 그건 지역방송사가 지역의 ‘상전’이 아닌 ‘하인’ 노릇을 해야 한다고 믿는 나의 매체관 때문이다. 계속 나의 편견을 근거로 말씀드려 보겠다.
장태연은 ‘하인’ 정신에 충실하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전 분야에 걸쳐 도민에 대한 ‘서비스’ 개념을 도입해 그걸 구체적인 실천사항으로 삼았다. 그는 새벽 5시50분에 출근해 늦게까지 일하는 ‘일 중독자’다. 전엔 이게 좋은 의미였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일 중독’이 신통찮은 결과를 낳는 바람에 이젠 자랑으로 넣긴 어렵게 됐다. 그래서 수정한다. 그는 ‘일 중독자’라기보다는 지역방송이 지역사회 발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고자 하는 ‘책임윤리 중독자’다.
장태연은 서열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소탈한 차림과 자세로 직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상례적으로 나눈다. 밥을 먹어도 중학생도 이용할 수 있는 값싼 곳만 찾는다. 보통 신임 사장이 오면 여기저기 인사를 다닌다. 장태연은 그간의 상식으론 인사를 가지 않아도 될, 비교적 힘없는 곳까지 찾아가 인사를 했다고 한다. 기관장은 어디를 가건 기관의 위상을 생각해 기사 딸린 대형차를 타고 다녀야 한다. 한국에서 ‘인격=차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태연은 사장 전용 대형차를 팔아버리고 소형차를 장기 렌트하는 조처를 취했다.
이렇게 이야길 하면 최고경영자(CEO)는 ‘미시’보다는 ‘거시’에 능해야 한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나도 그게 궁금해 알 만한 분께 물어보았더니, 수익모델 발굴에도 적극적이며 장기적인 비전도 갖고 있다고 한다. ‘기업가적 혁신 마인드’가 강하다는 것이다.
장태연은 서울 <문화방송>에서 낮은 곳에 애정을 가진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지휘하던 명프로듀서(PD)였다. 그는 여전히 그때의 정열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부디 그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개탄하는 지방자치제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다.
나는 지역 언론사 사장들이 일을 열심히 하건 안 하건 일단 얼굴도 널리 알리면서 지역민과 열심히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관장들끼리만 소통해선 희망이 없다. 자극이 없기 때문이다. 지역민들과 직접 소통할 때에 자극도 받고 책임의식도 생겨날 수 있다.
전국의 지역방송사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가장 큰 이유가 누군가가 적극 나서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지방 특유의 풍토라고 생각한다. 겸양을 소중히 하는 탓이겠지만, 이젠 이 풍토를 바꿀 때가 되었다. 장태연의 새로운 시도는 실험이 아니다. 만에 하나 실험으로 끝나게 내버려 둬서도 안 된다. 그의 성공은 지방방송을 바꾸고 더 나아가 지방 전체를 바꿀 수 있다. 지방은 성공 사례에 굶주려 있기 때문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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