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논설위원
아침햇발
추석 연휴가 끝났다. 수천만의 대이동 속에 민심 조정이 이뤄지는 명절의 단맛을 먼저 본 건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다. 그의 대선 승리는 2년 전 추석 때 주춧돌이 놓였다. 그때 서울에만 머물던 ‘이명박 대세론’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청와대가 임기 초반의 휘청거림 이후 민심을 다잡는 계기로 이번 추석을 잡은 건 당연한 순서다. 이제 청와대 바람대로 ‘정국 주도권 확보와 민심 반전’ 시나리오는 성공적으로 실행에 들어간 것일까.
이 대통령이 추석을 코앞에 두고 ‘대통령과의 대화’를 잡은 건 의미심장했다. 그는 국정운영의 자신감을 회복했음을 보여줌으로써, 현 정권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추석 밥상에서 다시 피어나길 바랐다. 지난 6개월의 실패는 촛불집회와 같은 부정확한 선동에 휩쓸린 탓이었으며, 법질서를 엄정하게 세우면 더는 흔들리진 않을 것이란 믿음을 국민에게 줄 수 있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직후 벌어진 몇 가지 상징적인 사건은 지금의 국정 난맥이 반대세력 탓이라기보다는 집권세력의 능력 부족과 미숙함에 기인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지난 10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불거지자 이 대통령은 긴급 외교안보장관 회의를 소집했다. 그는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혼란 없이 대응할 수 있도록 철저히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북한 정세가 극히 돌발적이고 유동적이란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뒤 우리 정보기관에서 흘러나온 얘기를 종합하면,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 징후는 8월 중순에 이미 포착됐고 지금은 상당히 회복된 상태란 것이다. 김 위원장 동향은 일급 정보사항인 만큼, 이 대통령은 당연히 첫 상황 발생부터 보고를 받아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긴급하게’ 안보장관 회의를 열면서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차분히 상황을 관리하는 게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옳았다.
청와대는 2년 전 이 무렵, 북한 핵실험을 거치면서 이 대통령 지지율이 급상승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따돌렸던 점을 떠올렸으리라. 그때 북핵 위기는 추석 민심을 타고 이명박 대세론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정치인과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은 다르다. 정치인은 반대세력 비난만으로 그만일 수 있지만, 대통령은 원인이 무엇이건 그 결과에 무한에 가까운 책임을 져야 한다. 일시적 분위기의 반전보다, 주요 정책에서 국민의 믿음을 유지하는 게 훨씬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추석 직전 한나라당이 국회 예결위 정족수를 편법으로 채웠다가 결국 추경예산안 처리에 실패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통령은 대통령답지 못하고, 원내 다수당인 여당은 그에 걸맞게 행동하지 못하니 국민들이 현 정권을 신뢰하지 못한다.
추석 밥상에 웃음꽃은 피어나지 못했다. 이런 식이라면 추석이 아니라 내년 설이 지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걸 국민들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믿음을 회복하려면 남을 탓하기보다 제 눈의 들보를 먼저 빼내야 한다. 연휴 직전 어느 저녁자리에서 들었던 우스갯소리 중에 ‘삼(三)수를 바꿔야 엠비(MB)가 산다’는 게 있었다. 이름이 ‘수’자로 끝나는 고위 공직자 셋을 일컫는 얘기였는데, 이런 은유에 민심은 담겨 있는 법이다. 단기 이벤트로 민심 흐름을 되돌리는 건 지금 불가능하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연말 인적개편론’은 그런 점에서 나름의 솔직한 고민을 담고 있다. 좀더 길게 보고, 무능한 집권세력을 어떻게 전면적으로 재정비할지를 이 대통령은 고민해야 할 때다.
박찬수 논설위원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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